전생 참회 위해 ‘보문품’ 외니 수갑 풀어져

 

동웅이 그러한 마음으로 며칠 만에 〈법화경〉 ‘보문품’을 삼천 번 읽고, 밤중에 홀로 다시 경을 외우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수갑 채운 것이 저절로 풀려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동웅의 수갑을 자세히 살펴보니 고랑과 열쇠가 떨어져 있는데 조금도 열리지 않았고 또 봉인한 것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오. 틀림없이 부처님의 가피요.”

중국 하동 땅 벼슬아치 동웅은 어릴 때부터 부처님을 숭상하여 술과 고기를 끊고 소찬으로 수십 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 봄 그만 역적의 죄를 뒤집어쓰고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냥 옥이 아니고 어사옥이었습니다. 임금에게 반역한 죄인들만 다루는 특별한 감옥이었던 것이지요. 임금은 동웅이 역적의 공모자라고 하여 어사위종을 시켜 혹독하게 다스렸습니다.

“너와 공모한 자들의 이름을 대면 풀어주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어서 옥을 나가게 될 것이다.”

“저는 그 누구와도 반역을 꾀한 적이 없습니다. 반역을 꾀한 적이 없는데 어찌 공모자들의 이름을 댈 수가 있겠습니까?”

동웅이 그렇게 항변했지만 어사위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봐라, 이놈이 아직 제 잘못을 모르고 우리를 능멸하려 드는구나. 이놈을 좀 더 가혹하게 취조하라.”

“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동웅이 아무리 울면서 애원해도 형벌을 가하는 관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끌려오면 누구나 그렇게들 말한다. 죽기 싫으면 순순히 자백하는 것이 좋아. 오늘이 아니면 내일 또 너를 고문하면 되니까.”

그 후부터 동웅에게 가해지는 형벌은 참혹했습니다. 그런데도 끝끝내 동웅은 그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았습니다. 아니 댈 수가 없었지요. 혹독한 고문을 가하던 관리들도 지쳐 동웅에게 칼을 씌우고 고랑을 차게 한 다음 다시 옥에 가두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왜 임금님과 관리들은 나를 이리 가혹하게 대하는 걸까요?”

마침 그 옥에는 당시 법관 이경현과 숙직하던 왕흔까지 관련되어 함께 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그걸 어찌 우린들 알겠소? 아마도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가 보오.”

불쑥 그렇게 말한 경현의 얼굴을 보고 동웅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내가 어째서 그걸 몰랐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오?”

경현과 왕흔이 어리둥절해서 묻자 동웅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지요. 전생? 맞는 말씀입니다. 이승에서의 일이 꼭 이승에서의 잘못만으로 되겠습니까? 분명 전생에 내가 지은 죄로 그 업보를 받는 것이겠지요. 아무도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현과 왕흔은 동웅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정신을 가다듬은 동웅이 〈법화경〉 ‘보문품’을 지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든지 이 경을 설하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마땅히 칠보로써 탑을 쌓되 지극히 높고 넓고 장엄하게 꾸밀 것이요, 또다시 사리를 봉안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 가운데는 이미 여래의 진신(眞身)이 있는 까닭이니라.

그가 외운 ‘보문품’은 경전이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다름 아님을 나타내는 경구이지요. 그에게 〈법화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로서, 불상이나 불탑과 같이 예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이 귀하던 그 때에는 한 권 경전이 갖는 의미가 각별했을 테지요.

그러나 처음 그것을 바라보는 경현과 왕흔은 아주 못마땅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임금과 관리들의 눈 밖에 났는데, 엉뚱하게도 유교의 경전도 아닌 불경을 외고 있으니 또 다른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그대가 누명을 쓴 것은 인정하겠으나 이 감옥에서, 더구나 반역죄만 다루는 어사옥에서 불경을 외우면 우리의 앞날이 어찌 되겠소?”

“제발 생각 없는 행동은 삼가주시오.”

경현과 왕흔은 동웅에게 점잖게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웅은 두 사람 앞에 합장을 하며 말했습니다.

“여기서 죽고 사는 것은 이미 우리들의 일이 아닙니다. 죄 없는 우리가 여기 갇혀 있는 것 또한 이승의 일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야 비로소 그동안 제가 지송하던 부처님의 말씀이 새로워집니다.”

두 사람도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동웅이 그러한 마음으로 며칠 만에 〈법화경〉 ‘보문품’을 삼천 번 읽고, 밤중에 홀로 다시 경을 외우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수갑 채운 것이 저절로 풀려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동웅이 놀라서 옆에 있던 경현을 깨우니 수갑의 고랑과 열쇠가 부서지지도 않고, 두어 자 길이 쯤 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고? 내 법관 생활을 그리 오래 하였어도 죄인에게 이런 일은 처음일세.”

경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흔도 감탄했습니다.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어사위종에게 또 다른 책망을 들을까 두려워 간수를 불렀습니다. 처음 간수는 동웅을 수상하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수갑이 풀렸습니다.”

동웅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부디 아무런 문제를 삼지 마시고 다시 수갑을 채워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간수가 수갑을 채우기 위해 촛불을 비춰 고랑과 열쇠를 자세히 살펴보니 열린 것이 아니라 자연히 벗겨진 것이었습니다. 간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군.”

간수는 수갑을 다시 채우면서 종이로 봉하고 그 위에다 관인을 찍었습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 동웅이 다시 〈법화경〉을 지송하는데 새벽이 되어 다시 열쇠가 떨어지며 마치 사람이 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동웅이 다시 경현과 왕흔을 깨웠습니다.

“이미 새벽이 되었으니 다시 관리를 부를 것이 없소. 괜스레 깨웠다가는 미움만 살 것이오. 날이 밝으면 자세히 살펴봅시다.”

경현의 말에 옳다고 생각한 세 사람은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환하게 날이 밝아 동웅의 수갑을 자세히 살펴보니 고랑과 열쇠가 떨어져 있는데 조금도 열리지 않았고 또 봉인한 것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오. 틀림없이 부처님의 가피요.”

경현이 합장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불법을 믿지 않았고 또 그 처가 경을 읽으면 왜 오랑캐 귀신에게 아첨을 부리느냐며 무수히 책망하여 왔는데 이제야 부처님 신통력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경전 중의 경전이 〈법화경〉이라고 하더니 역시 그 지송 영험은 한량이 없는 것인가 보오.”

왕흔 역시 합장을 하며 말했습니다.

경현이 합장한 채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세가 부처님 경을 배울 여가가 없게 되었으니 팔 보살의 명호나 가르쳐 주시오?”

그리고 경현이 왕흔과 함께 팔 보살 명호 삼만 번을 지송함에 동웅과 똑같이 수갑이 벗겨졌습니다. 간수들이 몰려와 아무리 살펴도 사람이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그 일은 어사위종의 귀에도 들어가고, 임금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고 다시 세 사람을 조사하라고 명령하였고, 어사위종은 그들 세 사람에게 아무 죄가 없음을 알렸습니다.

물론 무죄로 풀려난 그들이 〈법화경〉을 쓰고 팔 보살 탱화를 조성하며 한 평생 부처님께 정성을 다한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겠지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남을 탓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탓하는 그 마음에 부처님의 가피가 내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무심히 읽고, 암송하는 경전 독송의 진정한 의미는 진심, 세속의 어떠한 눈보라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바로 그 마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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