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 스님(창원 원흥사 주지, 부산 삼광사 14년 12월 2일 법회)

현대를 살아가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것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진심’이 있고, 두 번째는 ‘말조심’, 세 번째는 ‘망상조심’, 네 번째는 ‘무집착’이다. 불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네 가지이며, 신행생활을 할 때도 주의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새 옷을 입으면 하얗지만, 몇 번 입다보면 때가 묻는다. 그래서 때를 지우기 위해 세탁을 한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하얀 도화지 같지만, 세태에 찌들어 이처럼 누렇게 변해 간다. 경전이나 고승대덕의 가르침을 통해 초발심을 상기할 때 비로소 다시 깨끗해지게 된다. 진심(眞心),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은 불자가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 덕성이다. 항상 이 본래 마음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남을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서로를 격려하고 존경하고 존중한다면 나라도 시끄러울 일 하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서로를 존경하지 않는다. 손가락질만 한다. 집안에서도 자식이 부모를 존경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존경과 존중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아들(딸)아 이 세상에서 아버지(어머니)는 너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썼는데 지금은 변했다. ‘어떤 물건이 좋다’, ‘이 컵이 좋다’ 등 좋아한다는 말의 대상이 사람에서 물건으로 바뀌었다. 정치인, 직장인, 학생 할 것없이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 기쁨을 주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옆에 계신 분들의 얼굴을 보라. 옆에 계신분이 누구인가. ‘우리 신도’다. ‘우리 아버지’, ‘우리나라’, ‘우리 엄마’ 등 세계에 200여 나라 중에서 ‘우리’라는 말을 쓰는 곳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라는 말은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라는 말도 점점 줄어든다. 개인주의 탓이다. 그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불자들만이라도, 신도끼리 다투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 말 한마디를 건네도 부드럽게 ‘아이고 보살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시고 몸은 편찮은 곳 없으세요?’라고 덕담 한마디를 건네며 서로 친화를 이뤄야 한다. 그럴 때 신도들끼리 점점 가까워져 ‘우리’라는, ‘삼광사’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다음은 망상조심이다.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루에도 탑을 몇 십번 쌓고 허문다. ‘내가 돈을 이만큼 벌었으면 좋겠는데’, ‘만약 돈을 번다면 어디에 쓸까’ 나름대로 탑을 쌓다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쓸데없는 망상은 나를 허황되게 만든다. 망상은 현실을 직시하는데 방해를 한다.

팔정도의 첫째가 정견이다. 정견은 바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볼 때 바르게 보지 못한다. 오히려 고깝게, 삐딱하게 본다. 이것은 쓸데없는 망상이 불만을 낳았고, 이로 인해 바르게 보던 잣대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는데, 본 것처럼 들은 것처럼 말을 만들어 낸다. 이런 상황은 결국 누군가를 이간질시키는 말에 해당한다. 쓸데없는 망상이 원인이다. 망상을 조심하지 않으면 내 눈은 대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해태눈’이 된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어디서 무엇을 얘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쓸데없는 망상은 결국 구업을 짓는 결과를 낳는다.

내가 정말로 봤더라도 함부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말을 만들지도 말라. 오해하지 말고 오해를 살 일도 만들지 말라. 각자 당사자라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내가 하지 않은 일, 보지 않은 일에 대해 내가 한 것처럼, 본 것처럼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속이 터지고 열불이 날 것이다. 내가 당사자가 된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그런 일은 결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은 무집착이다. 집착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하는데 그 원인은 집착이다. 적당한 집착은 좋지만 과도한 집착은 우리를 파괴시킨다. 집착도 두 가지가 있다. 사람에 대한 집착과 물질에 대한 집착이다.

사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식, 남편, 친구에게 집착한다. 자식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면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 의처증, 의부증도 대부분 상대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다. 아들딸이 시집장가 갈 때도 집착을 한다. 아들에게 집착하면 며느리와 고부갈등이 생기고, 딸에게 집착하게 되면 사위에게 불만이 생긴다. 사람에 대한 집착도 적당하면 좋지만 과하면 이렇게 가정에 불화를 가져오고, 더 과해지면 파탄을 가져온다.

다음은 물질에 대한 집착이다. 먼저 돈에 대한 집착이다. 재물에 대한 집착이 너무 과하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이겠지만, 집에 대한 집착도 너무 강하다. ‘전세대란’ 등 집값이 마구 뛰다보니 부동산, 아파트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이 외에 자동차, 명품 등 과시욕을 채우기 위한 집착도 심해졌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우리를 물질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 불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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