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그림자 불자 손으로 걷어내고 수행·깨달음 이웃과 함께 나눠야죠!”

▲ (사)깨달음과나눔 이매옥 대표이사는 "불자들이 내 것을 채우려고 기도하지 않고 비우려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무소의 뿔처럼 걸어온 자비나눔의 길
‘이웃과 나누지 않는 수행 의미 없어’

2014년 4월 1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에서 좌초됐다. 이례적인 대형 여객선 사고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TV에서는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잠시 떠올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내 방송사 카메라에는 바다에 가라앉는 세월호와 탈출하지 못한 승객들이 잡혔다. 이 사고로 단원고 학생과 교직원을 비롯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304명이 사망했다. 어이없고 유례가 없는 인재(人災)였다.

(사)깨달음과나눔 이매옥(61) 대표이사도 세월호 사고 당시 TV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가장 먼저 배에서 탈출했다는 소식과 생존자 구조가 난항을 겪는 과정, 이후 세월호특별법 논란으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며 ‘산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건은 그가 미혼모자 지원시설을 만들어 ‘인간방생’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세상을 떠난 이,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마음에서다.

“산 사람들끼리 아무리 치고 박고 싸운다고 해도 떠난 이들은 돌아오지 않아요. 세월호 사고 희생자가 300명이 넘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 300명을 돕는 것이 당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곧 인간방생이고, 부처님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는 일이니까요.” 

환갑 넘어 얻은 손주들

이매옥 대표이사는 10월 28일 서울 마천동에 미혼모자 기본생활시설인 ‘도담하우스’를 개원했다. 기존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1층은 사무실로, 나머지 층은 각각 생활실과 상담실, 의무실, 산후회복실, 교양교육실로 꾸몄다. 특히 이 대표는 미혼모자 시설이 들어설 때 발생할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옆 건물까지 매입했다. 옆 건물 입주민들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 건물도 도담하우스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런 그의 배려 덕분인지 도담하우스에 입소한 미혼모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미혼모ㆍ미혼부를 비롯해 한부모가정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어요. 무슨 연유로 그렇게 됐는지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하기보다 그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더 많아요. 빛으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하지만 인간의 눈에는 그림자가 그름으로 보이죠. 그림자는 작위적이기 때문에 어느 곳을 응달로 만들 수도, 양달로 만들 수도 있어요. 미혼모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응달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환경을 충분히 바꿔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이 대표의 굳건한 의지 덕분에 현재 도담하우스는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설을 갖췄다.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 아토피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수유복과 아기옷을 커플룩으로 맞춰주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밖에 태극기를 내걸고 생후 100일에는 다 같이 잔치도 연다. 이곳에 머무는 1년이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준비한 소소한 것들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친손주인 것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얼마나 예쁜데요.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서 미혼모자에게 지원하는 이유는 이들이 훗날 오늘을 기억해 누군가에게 베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에요. 이곳에 머문 짧은 시간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그렇게 이 대표는 환갑이 넘어 어여쁜 손주들을 무더기로 얻었다. 

집도 절도 없이 만행 떠나

지금의 이 대표는 제법 넉넉하게 재산을 축적해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과거에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를 겪었던 시절도 있었다. 젊었을 때는 한 절의 신도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고, 보시를 많이 해야 자식이 잘 된다는 얘기에 사찰 행사는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다.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일곱 곳의 사찰 불사에 동참했을 정도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인을 위해 빚보증을 섰던 게 화근이 됐다. IMF로 인한 경제위기에 지인들의 빚더미를 떠안게 된 것이다. 한순간에 빈털터리가 된 이 씨, 그동안 여러 곳에 베푼 게 많았던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반겨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불사에 적극 참여했던 절의 스님마저도 그를 외면했다. 문득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그는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만행을 떠났다.

“7개월 동안 태백산맥을 오르내리며 수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어요. 한 겨울에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죠. 그렇게 방황하다가 과거에 느꼈던 사람들에 대한 환멸, 삶의 허망함 등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 인연에 얽매여 나를 되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닌지. 그때부터 나를 비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힘쓰는 게 참된 불사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 결심을 한 뒤 이 씨는 만행을 마쳤다. 그리고는 2000년부터 급식봉사를 하며 도시락 배달에 나섰다. 경제적으로 가진 게 없던 터라 많은 걸 하기 어려웠기에 선택한 나름의 회향 방법이었다. 하지만 베푼 만큼 다시 돌아오는 것인지, 그가 재기를 위해 시작한 건축업이 성공하면서 경제적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함께 수행하는 지인들과 매주 일요일마다 서울 마천동 일원에서 무료 급식봉사와 소외계층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행법을 가르쳐주는 스님께서 ‘이웃과 나누지 않는 수행은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일요일에 무료급식을 쉬는 복지관을 대신해 우리가 빈틈을 메우자고 의견을 모았죠.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도 정말 고마워하세요.”

하지만 이런 봉사의 기쁨도 잠시, 급식봉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어느 날부터 몸이 붓기 시작하고, 몸 곳곳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대학병원을 찾아가자 의사는 “이 몸으로 화장실은 다닐 수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심장질환과 척추협착증, 디스크 등 온갖 질병이 다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부터 안 좋았던 몸이 만행을 하면서 많이 망가졌었나 봐요. 병이라고 받아들이니 갑자기 진짜 심각하게 느껴졌어요.”

건강을 걱정하던 이 씨는 다행히도 지인을 따라 절에 갔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스승을 만났고, 수행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바로 결가부좌(항마좌) 수행 덕분이었다. 이 씨는 거적때기만 걸친 채 볼품없는 움막집에서 수행하는 스승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이후 수행을 하면서 오신채를 멀리했고,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2009년 (사)깨달음과나눔을 설립하면서 사회복지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깨달음과나눔은 무료급식봉사 외에도 효도 큰잔치ㆍ김장나눔ㆍ어르신 추석맞이 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불교에 기댈 수 있길

이 씨의 사회복지활동에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15년 가까이 급식봉사를 하면서 ‘음식이 상했다’는 인근 교회의 헛소문, ‘아들을 국회의원에 내보내기 위해 거짓 봉사를 한다’는 모함이 깃든 소문이 나돌았다. 이 씨의 급식봉사 사진이 교회 행사처럼 도용당한 일 등 타종교계의 방해가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묵묵히 봉사를 이어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아낌없이 노력했다. 사소한 방해에 휘둘리면 불법(佛法)을 온전히 실천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불교계의 움직임이 타종교에 비해 미미하다는 점이다. 그가 운영하는 급식봉사에 참여하는 봉사자 대부분이 개신교인이다. 새로 건립한 도담하우스도 불교계 두 번째 미혼모자시설인 것을 감안할 때 불교계가 복지 사각지대를 충분히 돌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내가 화려하기 위해 가진 것을 다 쓰면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두 사람을 내가 한 끼 굶음으로써 살릴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치 삶을 수백 년 살 것처럼 생각하니 집착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불교계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조금 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보다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요. 저도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 대표는 현재 월 3000만원가량의 도담하우스 운영비를 혼자 충당하고 있다. 개인후원자들의 후원이 있지만 그 액수는 많지 않다. 도담하우스가 정식기관으로 인정받아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1년간의 운영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외에도 무료 급식봉사 등의 사회복지활동까지 더하면 이 대표가 짊어지고 있는 경제적 부담은 더욱 크다.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아동복지시설과 대안학교까지 계획하고 있다. 이미 부지까지 마련해놓은 상황이다.

“불자들이 내 것을 채우려고 기도하지 말고 비우려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언가를 가져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 것을 챙기기에 급급하게 되거든요.”

기복적인 신앙자세를 버리고 지혜와 자비가 어우러지도록 늘 실천해야 참된 불자가 된다는 이매옥 대표. 그의 나눔이 불자들에게 본보기가 돼 사회의 그늘을 비추는 불자들의 자비광명 실천이 더욱 확대되길 기대한다.

▲ 10월 28일 개원한 불교계 두 번째 미혼모자시설 '도담하우스'.
▲ 미혼모자 기본생활시설인 '도담하우스' 실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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