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 불교 공부하며 실천행 소중함 깨달아

 

2003년 5월 23일, 300일에 이르는 지루한 재판이 끝나고 마침내 판결을 앞둔 그날.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아 저는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제 남은 생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라는 것을 몸뚱이도 알았는지, 잠이 들고서도 밤새 뒤척이며 헤맨 끝이었습니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이라 대개의 것들이 가물가물 한 중에도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무심코 올려다 본 창살 너머 하늘이 아침부터 엷은 구름으로 뿌옇더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그 것이 무슨 불길한 전조라도 되는 양 덜컥 수심에 빠져들었습니다. 헌데 그러고 나서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창 밖 어디선가 까치가 지저귀는 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또 무슨 계시나 희소식이라도 되는 양 대뜸 낙관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요란하게 파도를 탔습니다.

“피고 김성진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판사의 감정 없는 목소리는 저의 바람과 상관없이 최악의 결과를 알릴뿐이었습니다. 저지른 죄가 있기에 중형이 내려질 것을 얼마간 예견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맞닥뜨린 무기징역이라는 판결은 저의 예상과 각오를 모두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형이 확정된 후 부산교도소로 이송이 된 후 저를 괴롭힌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무기라는 말이 자아내는 기약 없음, 그러니까 절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한 없이 징역을 살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 것 아니냐고, 누구에게든 발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를 못 견딜 만큼 괴롭힌 것은 바로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죄책감이 그때서야 비로소 시나브로 처럼 저를 갉아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똥을 싸다니, 저는 날마다 저 자신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아, 살아서 무엇 할래! 이 따위로 살려면 차라리 죽지 왜 사니.’

자기혐오에 빠진 인간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작은 일에도 걸핏하면 발끈했고, 주변에서 하는 별것 아닌 말에도 곧잘 침울해했습니다. 자존감은 가뭇없이 사라져서, 좋은 뜻에서 해주는 말까지 비꼬는 소리로 들리기 일쑤였고 심지어 밖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하고 얼굴을 보는 것마저 견디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쉽게 말해 지나가는 바람에도 상처를 받고 성을 내는 지경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 자신부터 스스로를 벌레 보듯 하니 남들도 다 저를 그렇게 보는 것만 같고, 영원히 철창 안에 갇혀 살다가 그렇게 비루한 몰골로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죽자, 하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온 정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생각에 한 번 빠져들면 며칠씩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그 와중에 불교 방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저에게 있어 하나의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전적으로 사심의 발로였습니다. 애초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형자들이 여남은 가량 모여 염불과 독송, 찬불가 등을 하며 지내는 방이었습니다만, 저는 그저 제 몸의 편의를 위해 불교 방에 기어들었던 것입니다. 교도소 측에서도 불교 방 수형자들은 모범 수형자로 보고 더 많은 편의와 호의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린 것입니다. 다만 불교 방 나름의 규칙이 있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예불도 드리고 틈나는 대로 독경과 염불도 해야 했습니다. 듣고 보고 따르자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스님들 말씀은 하나같이 틀린바가 없었기에 그저 따라 하는 데는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 역시 차츰 귀가 솔깃하고 마음이 동하기까지 했습니다.

‘아, 나도 이 말씀처럼 깨닫고 홀가분해질 수 있다면, 성불은 아니더라도 다만 이 죄책감과 자기혐오에서 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서 그런 외침이 들렸습니다. 특히나 〈천수경〉의 한 구절에서 저는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 십약멸십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그 생각만 했습니다. 무언가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문제다. 죄는 죄가 아니다. 마음 하나 고쳐먹으면 죄도 사라진다. 그러면 참회를 이룰 수 있다.”

허구한 날 그 생각에 빠져 지냈습니다. 괴로워했던 날들이 모두 헛일인 것만 같고 당장 내일이라도 가붓해져서 죄 없는 맑은 마음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해서 오늘이야 내일이야 하면서 기대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마음 사라지라고 매일 빌었지만, 죄는 본래 자성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 모두 사라지면 죄도 함께 사라지리, 훤히 보이는 그 뜻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얼마간 안정이 되는 듯 하던 머릿속과 생활도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급해지기만 했습니다. 왜 안 되는 것이냐고 누구에게든 따지고 싶었고, 역시 성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가르침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자인 스님의 호통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는 여태 자학과 원망으로 세월을 허비하고 있을 터입니다.

부산교도소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참회반 법회를 봉행합니다. 2005년 4월 13일, 그 화창한 봄날 저는 매주 그렇듯 저만치 뒷줄에 앉아 멍하니 스님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시들해진 마음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지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이놈! 무엇 하나에라도 진정으로 너를 던져 본 적이 있느냐!”

그 한 말씀이 천둥처럼 머릿속을 때렸습니다.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기에 앞뒤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유독 그 말씀만 오롯이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스님과 눈이 마주친 것만 같고 그 말씀이 저 들으라고, 저더러 정신 차리라고 꾸짖는 말씀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날 오후 내내 혼자 중얼거리고 다녔습니다. ‘나는 과연 한 번이라도 전력으로 무엇에 매진해 본 적이 있던가?’ 결국 자인 스님의 말씀은 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단순히 저의 괴로움을 모면하고자, 혹은 무엇을 바라서 돌아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어떻게 그 지경이 되었는지 또한 알아야 했습니다. 물론 답이 쉬 얻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차츰 시간이 흐르며 어렴풋이나마 얻은 답은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껏 그 무엇에도 진심이었던 적이 없구나!’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고백건대 저는 단 한 번도 진정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저 바라기만 했지 합당한 노력이나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감이 익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고 할까요.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에 있어서도 저는 결코 진정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저 말로만 바랐던 것입니다. 정녕 바랐다면 무언가 바쳐야 옳았습니다. 온 삶을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다만 얼마간의 시간과 땀만이라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루아침에 무언가 저절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랐습니다. 아울러 저는 저 자신한테도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기억건대 살아오면서 저는 안 좋은 일이나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늘 외면하고 회피하기만 했습니다. 한 번도 직시하고 맞서지 못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요령과 편법만 찾았을 뿐 무엇 하나도 힘들여 이기거나 이루어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두려워서 혹은 자신이 없어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살인범이라는 참혹한 저의 모습 역시 그러한 무명의 나날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산 셈이니 그것은 짐승의 삶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달라져야만 했습니다.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부처님 가피인지는 몰라도 자인 스님의 호통으로 정신이 번쩍 든 이튿날, 우연찮게도 그 밤의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하루 30분 주어지는 운동시간이었습니다. 골몰해 걷던 중 문득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호색인지 흙빛을 띈 어린 달팽이가 느릿느릿 제 앞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걷다 자칫 밟을 뻔한 것을 겨우 발을 옮겨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지나쳐 걷는 내내 뒤통수가 쭈뼛거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걷고 뛰는 곳이라 당장이라도 누구에게 밟혀 으깨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이 제 책임이라도 되는 양 얼마나 불안하고 신경이 쓰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깟 달팽이 한 마리의 생사에 안절부절못하는 저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200미터 남짓 되는 운동장 한 바퀴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음을 졸인 끝에 마침내 달팽이의 무사함을 다시 확인하고는 잠시 망설인 끝에 달팽이를 집어 들어 근처 화단 풀밭에 놓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느꼈던 행복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깟 달팽이 한 마리가 무슨 대수라고! 저 또한 제 속에서 번지는 희열과 행복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얼마간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얻은 것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마치 구함을 받은 것이 달팽이가 아닌 저 자신이었던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진심으로 행할 때, 그 자리에서 모든 행복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울러 어깨 너머로 주워들었던 가르침 한 대목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그 한 말씀이 또렷하게 마음에 울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진정 저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깨달음이나 부처님의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정작 저에게 절실한 것은 작은 실천 하나였습니다. 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작은 씨앗 하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이 마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밖에 계신 부처님이 아니라 제 속에 깃들여 있는 저만의 부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날에야 그 사실을 비로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간단한 것을 모르고 저는 그때껏 피하고 도망치고 원망하기만 했으니 그런 무명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하루가 윤회다. 어제가 오늘을 만들었고 내일은 오늘의 내 생일 뿐이다. 그날 이후 십 년 동안 저는 이 한 생각을 붙잡고 삽니다. 저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저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늘의 저라는 것을 매일 거듭해서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것을 행함으로써 시작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흔한 말이지만 그 어떤 어렵고 두려운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부처님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있고, 순간순간 저 자신의 원칙을 잊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성불하려면 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무기수이면서도 누리고 있는 이 과분한 행복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아울러 제가 만약 성불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러니까 성불의 첫 걸음은 이미 내딛었다는 사실만은 단단히 믿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마저 나아가는 것, 나아가 마침내 성불에 이르는 것일 터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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