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여러 사람에 행복 전하는 즐거운 불사

▲ 사찰에서 행해지는 거의 모든 것이 불교의식이다. 바라무, 나비무 등도 불교의식에 속한다.<금강신문 자료사진>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목탁소리. 때론 귓전을 은은하게 울리는 이 소리가 신심을 더욱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듯 목탁을 두드리는 일도 불교의식일 정도로 불교에서 행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의식의 범주에 속합니다.

불자님들께서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불교 의식은 스님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영산재나 충북도 무형문화재 삼회향놀이, 중요무형문화재인 서울 진관사와 동해 삼화사의 국행수륙재 등은 모두 스님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죠.

사찰 의식도 모두 스님들에게 전승되고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요즘 들어 불교의식을 배우고자 하는 재가불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범패ㆍ범음처럼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한 분야는 재가자들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집전이나 장의염불 등은 큰 어려움 없이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불교의식을 배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꾸준하게 오랫동안 해야 제대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도전하지 못할 분야는 아닙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불교에 입문해 불교의식을 배워 수행으로 여기고 행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수행 뿐만 아니라 익히고 배운 것을 남을 위해 봉사하는 회향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렵게 배우고 익힌 불교의식을 쉽게 나누는 이들의 인생 한 토막을 들어보시죠. 

박해훈(59) 불자

▲ 박해훈 불자

25살 때 였어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간밤에 ‘네가 스님들께 신발 공양을 많이 하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꿈을 꾸었다”고 하시면서 절에 가 보라고 권하셨어요. 어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남한산성의 한 사찰에 갔었죠. 불사를 도우면서 지금까지 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다 4년 전 쯤 문득 불교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절에는 불교대학이 없었어요. 그래서 수소문 끝에 한 불교교양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욕심이 많아서 불교학과, 의식반, 범음범패과 등 세 학과에 동시에 입학했죠. 그런데 범음범패과 수업이 평일이라 직장 때문에 다닐 수가 없어서 6개월 정도 쉬었습니다. 불교의식 공부는 2년 간 꾸준히 마쳤고, 지금도 청강하면서 배우고 있어요. 불교학과에서 이론을 배우고 불교의식을 공부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사찰 문을 열고 들어가 부처님 앞에서 절하는 자세부터 불교의식이거든요. 그래서 불교의 일체 행위가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의식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식법사는 부처님 앞에서 당당히 용맹정진 해야 하고 한 치의 틀림없이 부처님께 예를 갖춰서 의식을 해야 하는데, 조금 부족한 듯 합니다. 그래서 항상 몸과 마음은 정갈하게 하고 의식을 집전하고 있어요.

뷸교의식반에서 소사물(목탁, 요령, 소북, 징)을 배우긴 하지만 금방 숙달되지는 않습니다.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한 번도 만져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집중을 해서 연습을 하다 보면 몸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맑은 소리가 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죠.

불교의식에 임종 염불이 있습니다. 임종 직전에 있는 분들에게 염불을 해주는 것이 그 분을 위한 가장 복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염불 소리를 듣고 임종하신다면 극락왕생하지 않으실까요?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됐습니다. 올해 백중 다음날 임종하셨어요. 저 개인적으로 불교의식을 배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머님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임종염불을 해 드린 분이 바로 제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임종 전에는 말씀을 못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 이마에 대고 “어머니는 저에게 불교를 알려 주셨고, 사형제를 낳아서 다들 결혼을 시키셨어요. 그리고 복을 많이 지으셔서 좋은 부잣집에 태어나신대요. 그러니 제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할 테니 어머님은 ‘관세음보살’을 하십시오”하고 말씀드렸지요. 임종하시기 전까지 둘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을 했어요.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와중에 어머님께서 임종하셨지요.

화장장에서도 제가 법복을 입고 염불 할 때 온 가족이 깜짝 놀라더군요.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진정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겨서인지 참고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주체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사무실에 출근해서 목탁을 치며 어머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어요. 어머님이 나를 불교로 이끌었고, 제가 불교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처럼 가족에게 피해 주지 않은 것처럼 제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불교의식을 공부한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할 당시 불교대학장 스님께서 “여러분들만 불교의식을 배워서 끝낼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워서 공부를 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제가 배운 것을 회향하고 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죠. 그래서 제가 경험했던 것을 도반들에게 알려 불교의식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도록 노력할 겁니다.

현재는 염불봉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종 불교행사 때 의식은 물론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머님이 제게 가르쳐 주신 불교이고, 제가 배운 불교의식을 회향하는 길이 곧 부처님께서 걸었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지금의 저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 김연희 불자.

김연희(68) 불자

어릴 적 자수성가한 할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죠.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타 종교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 시설에 다니면 다닐수록 힘이 들더군요. 갈 때마다 ‘참회하라’고 해서 기도하고 집에 오면 지칠대로 지쳐버렸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자주 다니던 인삼 가게에 갔다가 주인 할머니로부터 불교에 관한 얘기를 들었고, 다니던 미용실에서 108염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굉장한 자비와 사랑과 여유가 느껴졌거든요. 이후로 불교적 정서를 마음에 안고 지내었죠.

어머니를 따라 고향인 여수의 오동도에 있는 작은 암자에 몇 번 따라다니곤 했었어요.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49재 때 속으로 “좋은 곳에 가세요”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절을 했습니다. 절하는 방법을 몰랐을 때였는데, 무작정 했어요.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했어요. 살아계신다면 경치 좋은 곳에 모시고 다녔겠지만,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께서 좋은 곳으로 가시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 때 절하는 것이 제가 선택한 방법이었어요. 사시예불이 40여 분 진행됐는데, 죽으라고 절만 했거든요.

그러다가 불교공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2008년부터 불교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 만사 제쳐놓고 불교공부에 매달렸어요. 뭔가에 빠지면 누구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다른 것은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는데, 불교 공부와 불교 일은 중단하지 않고 있네요. 그런 저를 지켜보던 독실한 불자인 남편이 “출가를 하든지, 불교대학 옆에 방을 얻어 공부를 하든지 하라”고 엄포를 놓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남편은 저를 말리면 몸에 병이날까봐 말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불교의식을 접하게 됐어요. 스님들이 목탁을 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스님들처럼 목탁을 잘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목탁 뿐만 아니라 남들이 하는 건 다 잘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불교의식과 범음범패 공부를 시작했죠. 불교의식은 8년 간 해오고 있고, 범음범패는 3년 배우다가 중단했습니다.

너무 열심히 했는지, 목탁을 한 개 깨기도 했어요. 불교의식을 할 때 필요한 불구(佛具)를 배우고 다루다 보니 그 어떤 불구도 마음에서 자비사상이 일어나야 제대로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물론 주위 도반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범패를 배울 때 동연ㆍ지암ㆍ도은 스님 세 분이 많이 도와주셨죠.

제가 불교의식을 배우고 익힌 것은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됐지만, 지금은 내 힘으로 남들은 하기 어려운 불교의식으로 도반들을 신심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분들을 위한 임종염불이나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장의염불 봉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불교의식을 배우고 나서 호스피스 병동에 한 스님과 함께 봉사를 하러 다녔어요. 1년 간 스님을 따라 다니며 배웠죠. 참 보람있는 봉사라는 생각에 불교의식반을 졸업한 도반을 모아서 연화염불단을 결성했죠. 5년 정도 됐습니다. 누군가 요청하면 회원들과 함께 달려가 집전을 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 어떤 스님은 염불단원들이 하는 염불을 듣고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시기도 하셨죠. 그럴 때 작은 보람도 느낍니다.

물론 장의염불 봉사를 갔다가 종교가 다른 형제들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고, 방송 카메라 때문해 목탁 대신 잡지 말아야 할 요령을 집어든 경우도 있어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저를 채찍질하는 경책이 되기도 합니다.

절에 오래 다녔다고, 불교공부를 오래 했다고 진정한 불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진짜 불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기만 깨우쳐서 혼자만 행복하게 사는 것도 불자의 도리는 아닐 겁니다.

불교의식은 조금 어렵지만, 몸에 익히고 나면 여러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부처님 법입니다. 제가 배운 불교의식이 다른 이의 가슴을 적셔 함께 이 사바세계를 불국토를 가꾸어 가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위의 두 불자님들은 불교가 뭔지도 몰랐다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교리 공부를 시작한 뒤 불교의식을 배우신 분들입니다. 한 분은 자기가 배운 불교의식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해드렸고, 다른 한 분은 자신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이들과 함께 행복을 누리고 싶은 원대한 원을 세웠습니다.

불교의식,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못할정도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불교의식을 익히는 건 불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 아닐까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늘 깨어있는 불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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