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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한국불교의 모델 ‘대만불교’
  • 윤창화 도서출판 민족사 대표
  • 승인 2015.11.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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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부터 지탄받는 한국불교
계율 잘 지키는 대만불교 본받아
스님들 스스로 청정해져야

“한국불교의 미래는 밝은가?” 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에 동국대 부근에서 만난 어느 독실한 불자는 “한국불교는 전망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유는 수행하는 스님들을 보기가 어렵고, 스님들이 주색 등을 일삼아서 인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동시에 나는 “그 대안으로 대만불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완(臺灣) 불교는 약 40년 전만 해도 형편없었다. 불교신도는 고작해야 30% 정도였고, 스님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할 정도로 승려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신자들 역시 절에 가는 것을 감췄다. 그러나 지금은 역전되어 대만 인구의 약 80%가 불교신자이다. 불교신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스님들의 사회적 지위나 존경도(尊敬度) 역시 부처님 시대 이후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하다. 대만불교를 이렇게 만든 스님은 인순(仁順)법사와 성엄(聖嚴) 스님,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다.

한편 국가적으로 대만은 서구열강의 식민지였다. 1517년에는 포르투갈, 1624년에는 네덜란드, 그리고 2년 후인 1641년에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됐고, 청ㆍ일전쟁 이후에는 50년 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30~4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불교국으로 변해버린 대만불교의 모습을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인순(仁順)법사와 성엄(聖嚴) 스님, 그리고 그 제자들이 노력한 결과다. 여러 가지 발전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승가의 청정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정한 승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재가불자의 역할이다.

대만 스님들은 계율을 철저하게 지킨다. 음주(飮酒), 식육(食肉) 등 주색(酒色)은 입에 대지도 않고 파, 마늘 등 오신채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 계란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카스테라나 빵도 먹지 않는다. 대만 스님들은 밖에서 공양할 때도 채식당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 타의가 아니고 자의로 지킨다. 계율을 생명처럼 여긴다. 뿐만 아니라 대만 스님들은 사적으로 재산을 축적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돈도 모두 사중에 헌납한다. 그래서 대만 국민들은 스님들을 극진히 모시고 존경한다. 계율을 지키고 언행이 청정하고 마음이 자비스럽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어떤가? 청정 비구 승단임에도 불구하고 무애행이라는 미명 하에 음주식육 등 주색(酒色)이 만연돼 있다. 몇 년 전에는 백양사 사태가 있었고, 그 후로도 음주로 인한 사건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은처승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종교집단, 불교승단으로서 이런 모습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다.

불교가 이 시대의 종교로서 한국인들의 귀의처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청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계행이 청정해야 하고 금전에 초연해야 하고 언행이 모범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삼귀의에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스님들은 기대만치 거룩하지 못하고 인격적이지 못하다. 인격은 언행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격적인 승가상을 확립하자면 계행과 언행을 지켜야 한다. 문제는 간단하다. 5계를 지키고(적어도 표면적으로는) 8정도의 하나인 정업(正業, 바른 행동)과 정어(正語, 바른 언행)만 준수하면 된다. 계행, 언행이 올바르지 못하면 승가는 이 사회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 어떻게 스님들이 사회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스님들이 청정하면 모든 국민들은 대만처럼 스님들을 존경할 것이다. 알코올을 근절해야 하고 음주식육 등 계행에 어긋나는 행동을 단절해야 한다.

윤창화 도서출판 민족사 대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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