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번지 인사동에
국적 불명의 음식
전통음식 살리는 정책 필요

며칠 전의 일이다. 지인들과 인사동에서 뒤풀이를 하러 간이식당(포장마차)에 들렀다가 혼쭐이 났다. 밤 10시경인데, 인사동 포장마차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군데군데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주인에게 국수와 우동을 주문했다. 주인의 말투가 좀 다른 느낌이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음식 주문을 마쳤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그 포장마차 주인이 차려온 음식의 맛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한마디로 국수도 아니고, 우동에서도 그간 먹었던 음식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구동성으로 “아니 이게 뭐야!”하고 들었던 수저를 테이블에 놓은 것이다. 우동은 기름띠 두른 것이고, 국수는 붉은색 빛깔에 라면과 같은 맛이 났다. 그저 출출한 배고픔을 달래려고 주문한 음식이 중국 여느 도시의 뒷골목에서나 먹던 맛이었던 것이다. 일행들이 주인에게 “국수 맛이 왜 이런가요?”라고 질문하니, 곧바로 “왜 그래요”란 주인의 무뚝뚝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이로 인해 포장마차 안은 가장 어색한 분위기로 꽉 채워지고만 것이다.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이 음식 맛에 동조할 분위기였지만, 그때 상황은 너무나도 달랐다. 다른 손님들은 중국말을 하는 중국 관광객이 전부였던 것이다. 우리 일행들은 그 짧은 시간에 옆 테이블을 둘러본 다음, “쟤들은 다 먹었어”라고 되풀이하며 더 미련 없이 그곳을 나와 버렸다.

일행은 옆 골목의 포장마차 주인에게 조금 전 포장마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러자 주인은 우리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올해 초부터 서울의 종로 인근은 다 이렇다고 전했다. 우리 손님보다 중국 손님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하다보니, 이제는 재중동포들이 아예 사업적으로 포장마차를 임대해서 이와 같은 일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특별한 의미 없이 먹는 야식이라지만, 우리나라 문화 1번지 인사동 밤길에서 만난 야식의 맛은 전통 한국의 맛이 아니라 국제화된 맛으로 변모하고 있다. 좋게 보면 그럴 테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인사동에서만은 우리 전통음식이 가장 절제된 미학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음식의 품격에 대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음식의 과잉 담론을 하더라도 말이다. 방송에서 다뤄지는 삼시 세끼가 지구촌 음식으로 포획당한 느낌마저 드는 것도 예전의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인사동 또는 전통문화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음식, 다르게 한국음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맛 볼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과 상인들의 배려가 있어야 할 때이다. 돈을 좀 더 벌겠다고 영혼 없는 음식과 무차별적인 시장 개방을 직접 목도하면서 의식 없는 분들의 상술이 인사동을 진짜로 멍들게 하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우리 음식 맛을 잘못 알려주는 직접적인 계기가 지금 인사동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인사동의 음식문화가 달라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우리의 맛과 멋이 되살아나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이른 점심이나 때를 놓칠 때면 조계사 골목 승소(僧笑)점에서 국수나 만둣국을, 격조 있는 음식을 원할 때는 삼소(三笑)점을, 그리고 계절음식을 맛보려면 인사동길 따라 들어선 토속음식점을 찾으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인사동 안팎으로 이름난 전통음식 명소를 찾으면 주머니 걱정 없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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