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공이 〈법화경〉 들은 공덕으로 인간 환생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 아들은 한창 미운 일곱 살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밭 매랴, 베 짜랴, 소여물 먹이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늘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칭얼거리며 보챘습니다.

“엄마 밥 줘요?”

“엄마 옛날이야기 해 줘요?”

“엄마, 나하고 놀아줘요?”

그러면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너는 뒷 절 부처하고 놀아라.”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뒷산에는 폐허가 된 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묵혀 두어서 아무도 가까이 가는 이가 없었습니다. 인적이 끊긴 절에는 잡초만이 무성하였고, 법당 안에는 늘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문짝도 떨어져 나갔고 벽도 헐어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음산한 폐사지였습니다. 누구도 그 옛날 번성했던 절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또 어머니에게 같이 놀자고 보채기 시작하였습니다. 밭에서 잡초를 뜯고 있던 어머니는 마침 밭고랑에 나 있는 참외 덩굴에서 노랗게 잘 익은 참외를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얘야, 참외나 먹고 놀아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서 참외를 주었습니다. 아들은 기뻐하면서 참외를 받아 쥐고 먹으려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매일‘뒷 절 부처하고 놀아라’하고 말씀하셨는데 한번 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지요. 아들은 참외를 들고 뒷 절로 가 보았습니다. 마침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빛이 퇴락한 절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허물어지고 잡초만이 무성한 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들에게는 하나도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아늑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천천히 먼지가 수북이 쌓인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어디선가 독경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법화경〉을 설하는 사람은 부처님을 대신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도 되나 〈법화경〉을 전법하는 원력을 세워 사바세계에 나서 부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단 한 사람을 위해 설하는 것도 공덕이 큰데 하물며 많은 사람을 위해 〈법화경〉을 널리 설한 공덕이야 어찌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그 독경소리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많이 들어본 소리였습니다. 분명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들은 법당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모신 바로 뒤에 먼지를 뒤집어 쓴 〈법화경〉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거기서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책을 보는 순간 아들은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 책, 아들은 조심조심 〈법화경〉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법화경〉은 곧 늙은 스님으로 변하였습니다.

“아!”

“이제 오느냐? 오래 기다렸느니라.”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스님!”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저를 어떻게 아시나요?”

그러자 늙은 스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너는 본래 이 절에 있던 방아공이(절구방아의 뭉툭한 공이) 부처였느니라. 그러다가 절이 망해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자 방아공이가 쓸모가 없어졌단다. 너는 방아공이로 있을 때 일을 잘해서 내가 늘 〈법화경〉을 외워주었느니라. 그러면 넌 좋아서 더더욱 일을 잘했지. 그러한 공덕으로 너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느니라. 하여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여기서 오래도록 기다렸단다.”

“그럴리가요, 방아공이가 사람으로 태어나다니요?”

“세상은 너희 인간이 생각지 못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난단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허허, 그건 나한테 묻지 말고, 네 앞에 있는 〈법화경〉에게 물어보아라.”

그 말을 마치자 스님은 온데 간데 없고, 먼지 낀 〈법화경〉의 글씨가 석양을 받아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넋이 나간 아들은 그대로 법당에 앉아 지난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그 스님의 이야기가 사실일까? 그러다가 그만 고개를 흔들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한참 가만히 법당에 앉아 있으니 그만 해가 산 너머로 꼴딱 넘어가 버리고 사방은 깜깜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어두워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헐레벌떡 아들을 찾아 올라왔습니다. 어머니는 법당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자 안심이 되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얘야, 어두워졌단다. 어서 집으로 가자.”

그러자 아들이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의 집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도무지 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어머니, 그러니까......”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이해시킬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전생에 이 절의 방아공이였다고 하면 어머니는 분명 자신을 실성했다고 할 것이 뻔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 여기가 저의 집이니 어머니 혼자 집으로 가세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두고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꾸나.”

아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두고 무작정 집을 나올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들은 늘 꿈속의 일처럼 만났던 그 스님의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법화경〉을 가슴에 품고 독경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법화소년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무럭무럭 자라 건장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들은 어렸을 때의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고, 자신의 전생에 맞는 방앗간을 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방아거리가 쉴 사이 없이 들어왔습니다. 금방 부자가 되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아들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내 아들이 전생에 방아공이였다고?” 어머니는 그제야 손뼉을 쳤습니다.

“아하, 그 방아공이가 내가 가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곡식을 찧더니. 그 옆에는 언제나 누가 놓아두었는지 모르는 〈법화경〉이 있었어.”

아들은 조심스럽게 품속에 간직하고 있는 〈법화경〉을 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바로 이 책이다!”

그와 동시에 다시 펑! 〈법화경〉이 그 때 그 노스님으로 변하여 나타났습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신실한 것은 아무도 당할 수가 없느니. 비록 방아공이라고 하지만 그 공덕이 여기 있는 부처님을 움직였으니 차후에 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부처가 될 것이니라.”

어머니와 아들은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머니와 아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 노스님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그가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었던 것이지요.

무정물의 방아공이도 신실하며, 진실하면 부처가 된다는 이 무서운 이야기. 우리는 얼마쯤 이 이야기에 부합하며 살고 있을까요?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는 그런 불자들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을 기다려봅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