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 관심
불교문화분야 쏟으면
불교 저변 확대 큰 도움 

최근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주최로 진언과 다라니를 기록하는 실담문자에 관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된 바 있다. 이 세미나에 한 일본 학자가 ‘범종에 수록된 실담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우리나라 각 사찰에서 범종 조성 시에 기록한 실담문자가 어떤 내용이고, 어떤 글자체를 사용하였는지를 조사하여 상세하게 분석하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대부분의 국내 불교학자들은 크게 놀라는 모습으로 발표를 경청하였다. 왜냐하면 국내의 불교학자들 중에서 누구도 이 일본학자 만큼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은 사람들이 전문 학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범종과 탑을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이것을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한 불자들은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아시아범자연구회 소속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불자의 호기심으로, 그 다음에는 신심과 원력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그들보다 더 많은 자료를 모은 사람들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일본의 평범한 불자들은 자신들이 모은 자료를 인색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전 세계의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모두 제공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학자들도 우리 사찰의 실담문자 체계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 불자들이 모은 자료를 활용하기 위해 너도나도 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계 각국에는 고유 언어와 문자들이 있는데 이들 언어와 문자들은 국제 통용어인 영어 등 강대국의 언어에 밀려서 소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소멸 위기에 있는 희귀언어와 문자들을 공부하고 이를 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해당국가의 국민들이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이다. 인도 남부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였던 고대 타밀어는 힌디에 밀려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토착어이다. 이 고대 타밀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캐나다의 타밀어연구회 회원들이다. 그들의 연구결과 타밀어가 우리 한국말과 같거나 유사한 단어가 매우 많고, 문법체계가 같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전문 학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이었다.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전문가나 학자, 성직자들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후대에게 전승해주는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문화의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교계는 수천 년 동안 전승되어온 다양한 문화 원형들이 있다. 이들 문화원형이 소멸되지 않고 삶 속에서 전승되려면 평범한 불자들이 이를 이해하고, 숙지하고, 숙달하고 더 나아가 연구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각 사찰에서 뜻있는 불자들이 모여 연구회나 보존회 등을 만들어 불교문화를 익히고, 발표하고, 학자들과 함께 세미나를 여는 행사들이 이어진다면 사라져 가는 불교문화도 되살릴 수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소멸한 불교문화를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다. 불교는 육근을 청정하게 하는 범음작법, 수인, 사찰음식, 탱화, 바라춤과 작복, 북소리와 춤사위, 요가 등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문화는 수행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고안된 것들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불자들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이러한 불교문화들이 점차 역사의 기억 속으로 소멸하고 있다. 오히려 이웃 종교에서 불교문화를 응용하여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부처님께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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