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으킨 번뇌로
고단하고 괴로운 중생의 삶
번뇌 가지 끊고 일심정진 해야

“내 등(燈)은 내가 지킨다.” 소백산 자락 어느 사찰의 초하루법회에 함께했다가, 여든을 바라보는 신도회장이 법당 천장을 빼곡히 메운 등을 바라보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법당 등’의 개념이 없었을 뿐더러 전기로 등을 켜던 시절이 아니었다. 따라서 초파일이면 법당 마당에 등을 달고 그 안에 초를 꽂아 등을 켰기 때문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저마다 자신의 등을 지켰다는 것이다.

신도들은 하루 전날 목욕재계하고 사찰에 와서 다음날 초파일을 맞았는데, 방에 가서 자지 않고 등을 지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등 아래 돗자리를 깔아놓고 바람이 불면 두 손으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막으면서 밤새 자신의 소망이 담긴 등을 지키며 기도했다.

“자기 불 안 꺼뜨리려는 것도 있지만, 첫 새벽에 여기서 부처님 뵈려는 마음도 컸지요.” 신도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짐작해본다. 부처님오시기 전날 목욕재계하고 등에 불을 밝혀 밤새 그 등을 지키는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할지, 그렇게 어둠이 걷히면서 여명의 부처님을 맞는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환희로울지….

지금은 초파일 때 사찰에서 묵는 이들이 거의 없을뿐더러, 각종 법회에도 전화로 신청해서 기도비용만 보내고 참석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했더니, 신도회장의 넉넉하고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믿음이라는 게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는 거지요.”

실제로 근래 사찰을 다니다보면 전국 곳곳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철야정진하는 수행열기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음을 접하게 된다. 주 5일제가 되면서 평일에 일하는 불자들이 주말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개 특정 토요일을 정해 매달 참선, 기도, 염불 등으로 동참자들의 근기에 맞는 정진을 하고 있다.

소백산 자락의 또 다른 사찰에서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마다 삼천배 철야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3년간에 걸친 철야기도를 마치고 몇 해 전 회향을 했는데, 100명에 가까운 이들이 결사처럼 기도하며 남긴 흔적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은 또 다른 방식의 단기출가를 한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삼천배로 밤을 새고 나면 머릿속이 단순하고 명쾌해진다”는 그들의 말처럼, 3년간에 걸친 철야정진의 체험은 삶에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다. 마치 나무꾼을 보고 깨달은 이야기 속의 수행자처럼….

어느 수행자가 산속에서 도를 닦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앉기만 하면 온갖 번뇌망상이 끊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왔다. 나무꾼은 톱으로 나무 밑둥치를 슥슥 잘라서 나무가 쓰러지자, 밧줄로 몸통을 묶어 끌고 가려 했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걸려 끌리지 않자 도끼로 가지들을 탁탁 다 잘라버렸다. 둥치만 남은 나무는 나무꾼이 이끄는 대로 잘 끌려갔다. 이를 본 수행자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번뇌의 가지를 끊어야 일심정진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마음 편하기를 바라지만 스스로 일으킨 번뇌 때문에 고단하고 괴로운 것이 우리 중생의 삶이다. 그러니 일상 속에서 일심정진하는 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번뇌의 곰팡이가 낄 수 없어 세상살이에 필요한 마음공부의 반은 마친 셈이 아닐까. 밤새 등을 지켜 부처님을 맞이하는 이들, 일심삼매로 철야정진하는 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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