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무당병, 구인사 기도 후 집안 평안해져

    

‘인생의 꿈을 포기해야 하나? 망해버린 집안을 바로 세워야 하나?’

정우는 밤새도록 머리를 싸 메고 뒤척이다 아침이 돼서야 결론을 내렸다.

“내려가자, 내려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보는 기라!”

정우는 연인인 정희에게 이별의 편지를 쓰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세월은 고장도 나지 않고 빨리도 흘렀다. 인생의 꿈을 포기하고 강원도 사북에 내려온 지 두 해째 봄을 맞이했건만 집안은 무엇하나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정우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신이 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에 꼬꼬 무당한테서 함백에 굿하러 가자는 기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목욕 재개하고 제단에 불 밝히고 청수를 떠다 받쳐놓고 손바닥이 닳도록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출근해서 밤새 석탄을 캐고 피곤에 지쳐 들어오던 정우가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울화통이 치밀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확! 때려 뿌사버리기 전에 그만하소!”

어머니는 화들짝 놀랐지만, 소매를 걷어 붙이고 정우에게 한 소리를 한다.

“이놈이 천벌을 받을라꼬 환장을 했나! 어디다가 고함을 질러 대노!”

그 말에 정우가 “천벌이요? 어디 귀신이 있다면 천벌을 내라 보소!”라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기가차서 할 말을 잃었다. 정우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말썽 한 번 안 부린 착한 아들인데, 자신이 모시는 신령님을 보고, 귀신이 있으면 증명을 하라고 고함을 치다니. 어머니는 정식이 이야기를 했다.

“니 동생 정식이를 내가 어떻게 살렸는지 니도 잘 알제!”

정식이는 정우와 열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다. 정식이는 태어나서부터 사흘이 멀다하고 저승 문 앞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어렵게 얻은 자식을 잃을까봐 약방과 병원을 매일같이 오갔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급기야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본 후 굿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정식이의 병이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 길이 자식을 살릴 길이라 생각했다. 그 뒤 이산 저산 산당을 찾아 지극정성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북으로 이사를 오면서 꼬꼬 무당을 알게 됐는데, 굿판이 있는 날이면 북과 장구를 들고 따라다니며 무속신앙에 심취했다. 살림은 뒷전이었고 고집이 센 아버지와 다투고 난 후에는 아프다고 드러누워 끙끙대기만 했다. 답답했던 아버지가 무당에게 물으면 ‘신병’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아버지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버지는 어머니의 마른 모습을 보면서 어린 새끼들 생각해서 살려놓고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꼬고 무당이 시키는 대로 내림굿을 해주게 됐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노보살’로 불렸다. 그리고 ‘노보살’이 대단한 감투인양 좋아했다.

안방에 붉은 제단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차지했다.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판을 벌였고, 잘 나가던 사업은 뒷전이었다. 어린 동생들은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됐다. 제대 후 어렵게 항공사에 입사했던 정우가 회사를 나와 이상하게 변해버린 집안을 바로 세우기 위해 시골로 내려오게 된 이유였다.

“정식이는 우연의 일치로 나았을 뿐이지 귀신은 없어요.”

그때였다. 미경이가 미영이를 업고 마당으로 들어오며 정우를 보고 반겼다. 학교에 가야할 동생이 집에 있자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내가 굿하러 가면 미영이 볼 사람이 누가 있노? 그래서 학교 가지 말라고 했다. 가시나가 출세할 일도 없는데 졸업장만 받으면 되지 뭐가 대수고?”

어머니의 이 같은 말에 정우는 그 동안 참고 참아 왔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내 오늘 저놈의 제단을 박살내 버려야지!”

정우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마루 밑에서 빠루를 찾아들고 안방으로 뛰어들자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가로 막는다. 정우가 어머니를 밀어재낀 후 붉은 커튼을 걷자 백발이 성성한 산신이 한 손에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 염주 알을 들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 뒤로 도깨비 같은 신장들이 창과 칼을 치켜들고 금방이라고 내려 칠 듯이 정우를 노려본다.

“어디 귀신이 있는지? 있다면 나한테 천벌을 내리고 없다면 영원히 사라지거라!”

빠루를 든 정우의 손이 탱화의 중간을 내리치자 허무하게 찢어졌고 제단은 박살이 났다. 어머니는 거품을 물고 쓰러져 그날부터 자리를 깔고 누워 단식에 들어갔다. 지켜보는 정우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픈데 날이 갈수록 어머니는 피골이 상접하게 되어가니 결국 정우의 고집도 아버지께서 그랬듯이 오래가지 못했다.

정우는 꼬고 무당을 찾아가 염치불구하고 다시 한 번 내림굿을 부탁했다. 다시 굿판이 벌어졌고, 어머니는 북소리 징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깔모자를 덮어쓰고 한 손에 방울을 들고,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노루처럼 깡충깡충 마당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참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버렸고, 그날 이후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 광부인 병학 씨가 걱정이 되는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정우는 어머니의 무당병에 대해 설명했다. 병학은 그제야 정우의 표정이 어둡고 황달 걸린 환자처럼 얼굴색이 누런 이유를 알게 됐고, 눈동자가 반짝이며 무릎을 탁 쳤다.

“구인사에 도통하신 큰스님이 계신다는데 한 사람한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합디다. 우리 이모가 진짜 무당이셨는데 집안에서 하도 반대를 하니깐 우연한 기회에 구인사에 다녀온 뒤 제단을 없애 뿌고, 구인사에만 다니시니 집안이 편안해졌어요.”

정우는 자신의 어머니한테도 효과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구인사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정우는 구인사 생각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연인 정희가 정우를 찾아왔다. 당황한 정우는 어쩔 수없이 정희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정희에게 방안에 있는 붉은 제단을 보여줬다. 향냄새가 코를 찌르고 붉은 커튼이 음흉하게 펄럭이니 정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제야 정우가 이별을 통보한 이유를 알게 된 정희는 뒤돌아볼 여유 없이 돌아갔다. 그후 정우는 허구한 날 술에 찌들어 갔다.

희망 없는 세월이 무심하게 흐르던 중 정우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다가왔다. 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정우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했다.

“내가 어제 함백에 갔다왔다 아이가! 근데 동수 사촌누나라는데, 얼마나 이쁘고 복스럽게 생겼는지. 내가 니 색시감으로 점찍어 놨다카이. 니도 보면 홀딱 반할끼다.”

정우는 그런 어머니에게 화를 내며 “제발 꿈 깨소! 미친 아가씨가 아니라면 무당집에 시집을 오겠는교! 어머니가 무당놀이 하는 한 저는 결혼 같은 거 안 해요. 그러니 내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 마소!”라고 소리쳤다.

시간이 흘러 탄광촌에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어머니는 또다시 정우에게 아가씨를 만나보라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정우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순간 정우는 어머니의 말을 되새겨 본다. 그렇다. ‘원하는 곳에 길이 있다’ 하더니 드디어 구인사로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정우는 어머니에게 제안을 했다.

“그 아가씨를 만나볼 테니 어머니도 제 소원 하나 들어주소. 단양 구인사에 한번 다녀오소. 구인사에 도통하신 큰스님이 계시는데 찾아 온 신도들에게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주신다고 합디다.”

어머니는 어찌해야할지 망설였다.

“좋다. 내일 새벽차로 가께, 니도 약속 꼭 지켜라.”

다음날 어머니가 새벽차로 구인사로 떠난 후 정우는 맹장이 터져 치료를 받고 집에 누워 구인사로 간 어머니 생각에 푹 빠졌다.

‘구인사에 제대로 찾아 가셨을까? 그렇다면 큰스님을 뵀을까? 큰스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어느덧 어머니가 구인사에 간지 3박4일이 지났다. 문 앞에서 인기척이 났고, 정우는 방문 쪽을 경계하듯 바라봤다. 그때 어머니가 방문을 열어본다. 그런데 정우의 시선에 그렇게도 추하게 보였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목욕을 하고 하얀 한복을 차려 입은 옛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보통 외출했다 돌아오는 어머니라면 멀쩡했던 아들이 방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아들을 먼저 걱정하는 게 상식이지만, 어머니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빠루 어디 있노?”

빠루를 찾는 어머니를 보고 정우는 그 이유를 금세 짐작해냈다. 후다닥 기어나가 마루 밑에서 빠루를 찾아 들고 들어가 붉은 커튼을 잡아 재꼈다. “내가 오늘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정우는 빠루를 정신없이 휘둘렀고, 그 바람에 매장 수술한 부위가 터졌다. 정우는 고통에 정신을 잃었고, 다시 봉합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정우가 눈을 뜨자 어머니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정우는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 제단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다.

“제단은 내가 다리 밑에서 다 태웠다.”

그 말에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자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어머니는 정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구인사에만 다닐끼다.”

정우와 어머니는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정우에게 말했다.

“이제는 니가 어머니 소원을 들어줄 차례다.”

정우는 지나온 인연들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오늘이 오기까지 잃어버린 무지개 꿈은 아쉽지만 그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대신 새로운 인연을 만나 고마웠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구인사는 우리 가정을 지켜준 등불이고, 내 인생의 전부다!’

정우는 두 손을 높이 들고 고함을 질렀다.

“강정우 만세! 집안 바로 세우기 만세! 구인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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