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게으름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지런함은 생명의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죽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부처님께서는 게으름을 죽음과 마찬가지로 보셨어요. 그만큼 경계하셨죠. 성냄과 어리석음 분노를 말하는 삼독과 더불어 게으름을 가장 위험한 요소로 생각하셨습니다.

〈선생자경〉에서는 ‘게으름에는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추워서, 너무 더워서, 너무 일러서, 너무 늦어서, 너무 배고파서, 너무 배불러서 일하지 못한다는 게으름뱅이는 해야 할 일이 쌓이는 동안 돈을 벌지 못하며, 결국 갖고 있는 재산마저 날려버리게 된다는 거죠.

게으름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고칠 수 없는 불치의 습관이 아니라 고칠 마음을 먹지 않고 있는 게 문제죠. 게으른 나를 합리화시키는 겁니다. 연약하니까, 의지가 약하니까 등등 핑계를 대면서요.

부처님께서는 ‘방종하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탐욕하지 말라. 이는 생명을 죽이는 길이며 광명을 등지는 길이다’ 하고 가르치셨어요.

항상 깨어 있고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하다보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됩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 부처님이 남긴 당부인 만큼 게으름 피우는 습관은 버리세요.

알면서 버릴 수 없는 게으름을 해결하는 건 ‘나는 때려죽여도 게으르게 살지 않겠다’라고 결심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마음먹기 달린 거죠. 게으름을 벗어나겠다는 불자님의 마음이 정답입니다.

자식에 대한 소원성취가 잘 안 되다보니 제 처는 불심이 약해졌고, 며느리하고도 사소한 일로 자주 충돌합니다. 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지구가 멸망을 해도 바퀴벌레와 고부갈등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부갈등은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 같은 숙제라고들 하는데요. 왜 이런 갈등들이 생길까요?

고부갈등의 핵심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들과 남편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인 셈인데요. 아들이 성인이 되고 배우자를 맞이해도 아들과의 애착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이 며느리와 갈등을 빚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건 아들입니다. 아내를 지키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입증해야 하는 거죠.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 주지시켜 주세요.

자식에 대한 소원성취가 안되어서 불심이 약해졌다고 하셨는데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죠? 내가 배고픈데 자식이 먹으면 내 배가 부릅니까? 자식이 직접 먹어야 자기 배가 부른 거죠.

불자님은 부인을 챙기시고, 아드님은 며느리를 챙기자고 동맹을 맺으시는 건 어떨까요? 부인이 며느리 흉을 보면 “아이고 마누라 많이 힘들었겠네” 하는 정도만 동조해주세요. 같이 흉을 보고 편을 들어주는 건 안 됩니다.

그저 아들 며느리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면 됩니다. 보상받으려고 자식 키우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내 아들이 귀하면 남의 귀한 딸인 며느리 또한 귀하게 보셔야 한다는 걸 부인에게도 납득시켜주세요.

어떻게 마음에 다 들겠어요. 내 자식도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을 텐데요. 기대는 줄이시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시는 것이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 한 가지는 불자님께서 부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대화하고 같이 취미생활도 즐기면서 자식한테 엄한 신경 쓰지 않도록 하다보면 고부갈등도 해결되어 갈 겁니다.

소원성취가 되지 않아 기도가 하기 싫다하면 그저 나들이 삼아 절에 같이 가자 하세요. 마음 다스리러 가자고 하며 자꾸 모 나려는 마음을 달래주세요.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통이 따라오는 것이니 그 또한 동반자의 사랑으로 감싸주시면 해결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들어 막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화를 덜 내고, 우아하게 아이들을 혼낼 수 있을까요?

부처님 탄생게 아시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시작하는 것이 부처님 탄생게에요. 이걸 잘못 해석해서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잘났다는 식으로 세간에서는 많이 사용하는데요.

우리 불자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인간의 존엄성과 절대성의 위대함을 발견한 부처님의 선언이라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질문에 갑자기 탄생게 얘기를 해서 의아하실 텐데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그게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도 잊으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에요.

내 자식이니까, 나보다 어리니까 내가 더 우월하기에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다 같이 노력해가는 것이지요.

만약에 불자님 집에 불이 났는데, 애들이 노는데 정신 팔려서 아무리 도망치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불자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야단치고 억지로 끌고 나오시겠죠? 살려야 하니까.

부처님이라면 그 상황에 어떻게 하셨을까요?

화를 내기 전에 대화를 하셔야 해요. 아이도 나만큼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고 부처가 될 씨앗을 품은 부처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불자라고 한문으로 쓸 때 사람 자(者) 자를 안 써요. 아들 자(子)자를 씁니다. 우리는 모두 부처님의 자식이에요. 깨달은 자의 자식이고 깨달음의 씨앗을 모두 품고 있는 예비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잖아요. 그런데 왜 화부터 냅니까. 아직 어리고 아직 부족하니까 실수투성이인 거잖아요. 어른의 규율에 다 맞출 수 있는 어린이가 있다면 어린이가 아니죠.

우아하게 혼내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점을 이해시키고, 하지 않도록 설득시키는 부모의 사랑 가득한 양육이 필요한 겁니다. 아이의 잘못에 화를 내면 화나는 그 감정에 먹혀서 교육이 되지 않게 됩니다.

잘 명심하셔서 화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마시고, 아이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화로 푸는 방법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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