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가에서 추석 연휴가 끝난 뒤 가을 축제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지성은 온데간데 없이 퇴폐문구가 가을축제 대학가를 도배하고 있다는 보도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의식 있는 학생들이 나서 자정운동(自淨運動)을 벌이고 있는 것은 천만다행스런 일입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야 상아탑의 특권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행동이 자유를 넘어 방종으로 치닫게 되면 그 피해는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최근 교직 사회에서도 자정운동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고 합니다. 교사의 성범죄 사건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충격의 여파가 간단치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교직사회의 자정운동이란 공동체의 존경을 받기 위해선 교사들 스스로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고 아이들에게 진정한 인성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됩니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서 감동적인 장면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정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키포인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정은 본래 불교의 칠불통계(七佛通戒)에 나오는 말입니다. 즉 모든 악업을 짓지 말고[諸惡莫作]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衆善奉行]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自淨其意]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是諸佛敎]이다는 뜻이죠.

이 말씀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대의 대표적 시인으로 유명한 백낙천이 항주 자사로 부임해 도림선사(道林禪師)를 찾아갔습니다. 도림선사는 도량 안에 있는 노송(老松)에 자주 올라가 좌선함으로써 마치 새의 둥지처럼 보인다 해 조과(鳥)선사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백낙천이 찾아간 그 날도 역시 도림선사는 노송 위에 올라가 가부좌한 자세로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백낙천이 “스님의 거처가 너무 위험합니다”하니 선사가 “당신이 더 위험하네”라고 대꾸했습니다. 이에 백낙천이 “나는 이미 벼슬이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무엇이 위험하겠소?” 하며 당당히 말했습니다. 선사는 백낙천의 자만심을 꿰뚫어보고 “티끌 같은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심만 늘고 번뇌와 탐욕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 일갈했습니다. 선사의 기개에 눌린 백낙천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들려준 말이 앞의 칠불통계였습니다. 백낙천은 이 말에 실망하며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라는 건 세 살먹은 어린애도 아는 얘기 아닙니까?” 볼 멘 소리를 하였습니다. 선사는 바로 답했습니다.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일인 걸” 이에 백낙천은 크게 깨닫고 선사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가까이 하기 위한 자정은 이처럼 큰 울림이 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야기 하나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세 번에 걸쳐 뉴욕 시장을 지낸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Henry La Guardia)가 1930년 판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상점에서 빵을 훔쳤다가 절도죄로 기소된 노인의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라과디아는 노인에게 질문했습니다. “빵을 훔쳤던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왜 훔치신거죠?”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살았죠.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는 고픈데 수중엔 돈이 없고, 그래서 눈에 뵈는 게 없었습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빵 한 덩어리를 훔치게 되었습니다.”

노인의 답변을 들은 라과디아가 마침내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친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므로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하여 10달러의 벌금을 선고합니다.”

사람들은 노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라과디아가 용서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와 달리 라과디아는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술렁이는 법정 분위기 속에서 라과디아의 논고는 계속됐습니다.

“이 노인은 이곳 법정을 나가면 또 다시 빵을 훔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노인의 책임만이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들께서도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 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선고 후 라과디아가 먼저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담았습니다. 방청석 시민들도 기꺼이 라과디아의 권고에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57달러 50센트. 라과디아는 그 돈을 노인에게 건넸고 노인은 그 돈에서 10달러를 꺼내 벌금으로 냈습니다.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쥔 노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나섰습니다.

라과디아의 이 판결은 아주 감동적인 자정 효과를 낳았습니다. 마음을 맑힐 때 사회도 맑아지는 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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