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로서 삶의 표본을 보여주세요

저는 가족과 절에 와서 법문도 듣고, 종교생활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부처님 품으로 우리 가족을 포교를 할 수 있을까요?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순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다고 하잖아요. 금덩이를 줘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가족들이 가치를 알 수 있도록 해줘야죠. 가족들이 불교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불교의 위대한 교리를 가르치면 될까요? 억지로 절에 끌고 와서 법회에 앉혀놓는다고 될까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방법은 불자님이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자는 저런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셔야 하고, 집사람, 엄마를 달라지게 한 불교에 관심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스님은 불교를 금지하는 신라에서 어떻게 불교를 전파했는지 아십니까?

아도스님은 승복을 벗고 국경 지역 어느 마을의 촌장 집에서 종이 되어 양떼를 키웠습니다. 자그만치 10년을요. 늘 진심으로 일을 하고 재산을 열배나 불려주니 촌장이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그 종의 말은 다 믿었답니다. 그렇게 10년을 종살이를 한 아도스님은 어느 날 촌장에게 고백을 하죠. 종을 믿었던 촌장이 그를 고발했겠습니까? 자기 집 뒤에 굴을 파고 거기서 교화하도록 가족 친척 지인들을 불러들였답니다. 스스로도 불제자가 되었고, 여동생은 스님으로 출가를 했다고 합니다.

아도스님이 됐다 스스로를 세뇌하세요. 남편과 자식들을 불자로 만들기 위해 종살이한다 생각하고 불자로서의 삶의 표본을 보이시며 지극정성으로 대해보십시오.

불교 자랑만으로는 감화시킬 수 없습니다.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가족들을 부처로 섬긴다면 가족 포교, 반드시 성공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요. 그 마음 하나 돌리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죠.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마음이 짓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마음은 모양이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죠. 오장육부처럼 보이면 관리도 하고 치료도 할 텐데 말입니다.

일체유심조 들어보셨죠? 불자라면 다 들어보셨을 말인데요. 〈화엄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게송 하나 들려드릴게요. 

若人慾了知(약인욕요지)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만약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우주의 본질을 관찰하여 보아라. 우주에 나타난 삼라만상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다. 라는 뜻이에요.

이게 일체유심조가 나온 배경이에요. 본질을 보라는 거죠. 내가 보고 들은 형상과 소리에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본 것이 과연 본질인지 다시 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에서 다 비롯되는데 왜 내 마음 하나 가누기 어려울까요? 내가 바라보는 것, 원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질이 아닌 것에 호도되고 있기 때문인 거죠.

마음먹은 대로 다 마음을 조정하려면 본질을 제대로 보셔야 해요.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고,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마음 하나 돌릴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게 되는 겁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역지사지 하시고, 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 생각에만 빠져있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이 아닌 집착과 부정으로 구속된 삶을 살게 되니까요.

마음 한 번 바꾸면 지옥 같은 현재가 천국이 되고,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을 극락으로 만드는 건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것, 잊지 마세요. 

저는 남편과 생각이 항상 반대입니다. 남편은 뭐든지 제가 원하는 것은 부정합니다. 안 된다, 하지마, 그만둬. 나이가 들어도 변화가 없네요. 이것도 제 업 때문일까요?

인생의 동반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죠. 몇 십 년을 살아도 그렇다면 더더욱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있습니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죠. 바깥분이 불자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불자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던 일이 마음에 차지 않았거나, 맺혀있는 거죠. 그 이후론 불자님의 행동을 무조건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업이죠. 업이라고 얘기를 하면 악업, 인과응보, 권선징악 이런 단어들만 떠올리시는데, 업에는 선업이 있고, 악업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모든 말, 모든 생각은 다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좋은 행동하고 좋은 말 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할 거고, 나는 선업을 쌓고 있는 게 됩니다.

부부의 인연은 사랑으로 시작한 책임입니다. 평생을 함께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죠. 수행을 할 때도 초발심을 늘 강조하잖아요. 일상에서 일을 해나갈 때도 초심을 강조하죠. 부부간에도 처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잊지 마세요.

서로에게 험한 말을 하기 전에 배려한다면 다툼도 줄어들 것입니다. 불자님 생각처럼 이게 다 내 전생의 과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다음 생에는 그 악연의 고리를 끊어버리세요. 다음 생에 태어나서 또 지금의 남편에게 반대로 부정적인 시선만 보내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지금이 평생 겪은 일을 용서하고 극복하세요. 다음 생에 남편분을 만났을 때는 긍정의 시선으로 봐주실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먼저 배려하고 위해주는 그 마음이 곧 관세음보살의 마음입니다. 상대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뜨고, 해답은 내 마음에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세요. 오직 나의 실천에 의해서 나의 삶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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