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ㆍ불행은 ‘마음’에 달렸다

▲ 헤르만 헤세 作 ‘크리스탈 산(Kristallgebirge, 1931)’〈사진제공=본다빈치〉

  세계적인 명작소설 〈데미안〉을 저술하고 69세 때 소설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출신의 작가. 그의 저서들은 6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적으로 1억 5000만부 넘게 팔렸다.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그, 세계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헤르만 헤세(1877~1962)다.

헤르만 헤세는 불교인들에게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인 〈싯다르타〉를 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싯다르타〉는 헤세 자신의 삶을 이상화시킨 작품이다.

그는 1877년 신학자이자 선교사였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와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 헤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신경쇠약증이 발병해 학교를 뛰쳐나와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가1893년 시계공장에 취직해 3년 간 일했고, 1895년 가을 튀빙겐의 한 서점에 견습점원으로 취직해 문학을 공부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2번의 이혼과 3번의 결혼을 하는 풍파를 겪고 생활의 안정을 찾았지만, 현실생활에 염증을 느껴 현실도피성 세계 여행을 떠난다. 1911년 인도를 여행하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심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심리치료의 한 방법인 그림그리기를 권유받고 1917년부터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기독교인이었지만 불교ㆍ도교ㆍ인도사상 등 동양적 사상에 심취한 그였기에 그의 그림 속에는 동양적 감성이 녹아있다.

헤세의 사상과 감성이 녹아든 그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헤르만 헤세 그림展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11월 1일)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헤세의 박물관 △헤세의 초대 △방황과 고통 △우정과 사랑 △치유와 회복 △평화와 희망 등 헤세의 그림들을 그의 일대기에 맞춰 구성,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가 종이에 그린 1차원의 평면예술은 현대의 기술에 힘입어 3차원의 입체예술로 재탄생했다. 그림 속에 사람이 걸어다니고, 나비와 새가 날아다니는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해 흥미롭다. 특히 헤세의 회화 작품 외에도 친필 사인이 담긴 초간본, 수제본 등 문학작품과 미공개 유품까지 전시돼 눈길을 끈다.

그는 치료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엔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는 방편이 됐다. 헤세는 당시 “나는 (미술)치료를 통해서 정신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고 영감을 얻게 되면서 창작에 열중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정신이 지배하여 만병을 치료하니/ 각 태어난 샘에서 초록이 몰려온다./ 세계는 새롭고 의미 깊게 나누어지고/ 마음은 즐겁고 쾌활해진다(화가의 기쁨 중)”고도 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살던 곳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이 중 그가 동양적 사상에 심취해 있음을 암시하는 작품이 몇몇 있다. 계곡(Blick ins Seetal, 1930), 겨울(Winter), 크리스탈산(Kristallgebirge, 1931), 테신의 풍경(Tessiner Landschaf t, 1959) 등이 대표적인 그림들이다. 이 작품들은 선묵으로 농도를 조절해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만큼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한다. 특히 서양화 기법으로 그리긴 했지만, 작품 ‘크리스탈 산’에 등장하는 삐죽삐죽 솟은 바위들은 마치 우리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우리와 닮았다. 그리고 그 속엔 ‘마음이 평화롭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겨울’ 속에 등장하는 눈 덮힌 나무 한 그루는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산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헤세가 소설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의 시 ‘행복해 진다는 것’에 그의 삶과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하략….” 

헤세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 행복은 ‘마음’에서 찾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다름 아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 〈싯다르타〉를 쓰면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빚어낸 것’이라는 말의 참뜻을 알아챘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시관 한 귀퉁이에 홀로 조용히 앉아 그의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성벽을 넘어 출가자의 길에 걸으며 6년 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든 부처님의 일생이 뇌리를 스친다. 부처님이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깨달음’이라는 행복을 얻은 것처럼 헤르만 헤세 또한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을 찾았다.

53년 전 타계한 대문호이자 화가인 헤르만 헤세. 이번 전시가 끝나기 전에 함께 행복을 누리고 싶은 이들과 함께 그가 남긴 그림 속에 담긴 ‘행복을 찾는 마음여행을 떠나보시길….

▲ 헤르만 헤세 作 ‘겨울(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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