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삶 불교 만나 ‘술술’…“이젠 행복해요”

 

뒤돌아보면 허무함 가득했던 나날들
불자친구 위로 큰 힘… 불교 가까워져

저는 40대 초반으로, 16살과 8개월 된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또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운영한지는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니 아쉬움과 허무한 생각이 듭니다. 늘 고달프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일만 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달라졌지만요.

20대 초반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궁합이 좋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부부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친정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딸에게 ‘바보’라며 친정에도 오지 못하게 했겠습니까?

남편이 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듣기 싫은 말을 했지만 큰아들이 있어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저 또한 잘하고만 산 건 아니었구요. 신랑의 행동을 빌미로 늘 술을 마셨고, 짜증을 부렸으니까요. 불과 2년전 까지만 해도 그랬답니다. 큰아들에게 정말로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4년 전쯤 저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의 고향 친구이자 초ㆍ중학교 동창입니다. 동창모임에서 만나 지금까지 함께 잘 지내고 있지요. 그 친구는 천천히 저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신랑과 싸운 저를 위로해 주었구요. 그 다음에는 자식 등 저의 개인적인 고민을 들어주었답니다. 차마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얘기들도 잘 들어주었고, 고쳐주고 타이르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었습니다. 친구는 구미에 살았고, 저는 대구에 살아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만, 늘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았습니다. 사실 그때는 남편이 짜증을 내며 친구에게 나쁜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렇게 친구와 인연을 쌓아가면서 두 번 정도 구인사와 지역 사찰에 다녔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적에 교회에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친구도 절에 가자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 친구는 좋은 얘기와 반듯한 행동으로 저를 흔들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남편도 노력하는 저와 친구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인연이 있는 한 보살님이 식당에 오셔서 제 남편의 안 좋은 모습을 보시고는 고쳐주셨죠. 제가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행위와 기도로 나쁜 것을 없애 주시는 것이었어요.

이해가 잘 되진 않았지만 이제껏 나쁜 일은 없었기에 내심 기대도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신랑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친구와 보살님은 별다른 얘기없이 ‘잘 되면 좋지’ 하시며 이후의 일을 본인에게 맡기고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가셨습니다. 고마운 분들을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남편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처음엔 기운이 없어 보였던, 매일 짜증과 불만을 토로하던 고집불통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달라진 모습은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것입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네요. ‘밥은 먹었냐’고 묻고, 아플 때 걱정해주고, ‘힘들어 보인다’며 위로해 주고.

단순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데, 지금까지 왜 그렇게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을 때쯤 친정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신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죠.

사실 저는 시댁, 친정과 거의 왕래하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 장례식장에서도 가족들로부터 소외됐습니다. 눈물이 났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 울었고, 제가 설 자리가 없다는 서러움 때문에 구석에 숨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래도 어린시절부터 저를 가장 생각해주는 사람은 아버지였어요. 장례식을 마친 뒤 엄마와 5남매는 친정집에 모여 아버지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인데, 제가 아버지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벌의 옷과 장갑, 지갑, 여행가방, 신발, 손수건까지 말입니다. 여행가방에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죽은 사람 물건을 그렇게 챙겨 집에 두면 좋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그 뒤로 며칠 꼬박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자려고 자려고해도 이상한 것들만 보이고 생각나고 무섭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제 앞에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친구가 말해준 49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절에 많이 다니지 않았지만 근처 천태종 사찰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아버지의 49재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입재와 막재만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절에 가게 되었구요. 사찰에 대한 어려운 마음도 점점 없어졌습니다. 막재 때 스님들이 제사를 지내 주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애써 주시고 진심으로 염불해 주시니,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로서는 감사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이 내적으로 조금 더 성숙해짐을 느꼈습니다. 깊은 신앙은 아니었지만, 집안 식구들이 교회에 다니는 터라 ‘불교’, ‘절’ 자체를 두렵게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니 좀 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씩 안정을 찾을 때쯤, 친구의 권유로 구인사에서 4박 5일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덜컥 겁이 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수백 가지의 핑계거리가 떠올랐지만 ‘한 번 가보자’고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친구의 말을 들어서 좋지 않았던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구인사에 도착해 기도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누가 볼까봐 곁눈질만 했습니다. 잠을 참기도 힘들었고 조금 지나선 눈물이 났습니다. 속으로 ‘내가 왜 혼자 이러고 있어야 하지’ 하면서요. 그래도 어차피 왔으니 참고 있어봐야겠다 싶어 다른 분들이 기도하시는 걸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날 기도가 잘 되기 시작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상한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4박 5일을 다녀와서 3개월 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었구요. 그 아이가 지금 8개월 된 아들입니다. 사실 저는 나이도 많고 첫째아이 이후 임신이 잘 되지 않아 병원도 가보았어요. 실패도 여러 번 한 상태였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출산할 때는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아기는 병원에 좀 있다가 퇴원했구요.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도만 했지만 이 아이를 통해서 우리집에 복을 주시는 거라구요. 좀 힘들긴 하지만 우리집은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처음에는 나이 차이나는 동생을 창피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큰아들도 지금은 너무 좋아하구요. 큰아들 키울 때는 신경도 안 쓰고 투덜대던 남편도 너무도 아기를 귀하게 여기고 살뜰하게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집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친구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좋은 일들만 생기는 것 같습니다. 둘째아이는 친정엄마가 보살펴 주십니다. 사이가 좋지 않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봐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깜짝깜짝 놀랄 일들만 생기구요. 아주 행복합니다.

요즘은 온가족이 지역 사찰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친정식구들도 제가 절에 다니는 걸 욕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전의 모습보다 지금 더 잘 되어가는 걸 보고 있으니까요. 친구는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구요. 친구의 말을 신뢰하기에 또 노력해봅니다. 얼마 전에는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 천도재를 올려드렸습니다. 사실 욕심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나면 더 좋아지는 걸 느낍니다. 젊은 나이에 식당을 하면서 고달프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장사하는 것도 재미있구요. 저의 생활이 바뀌니 장사도 잘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노력하고 배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친구를 만나서 행복합니다. 제가 도움받은 만큼 저 또한 단단한 사람이 되어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천태종 구인사에 가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열심히 살면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또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제 친구와 그의 인연된 보살님들을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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