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석 스님(예산 법융사 주지, 천안 만수사 10월 2일 법문)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 중, 제각기 믿는 ‘삼생(三生, 전생ㆍ금생ㆍ후생)’ 비슷한 게 있는데 불교만큼 자세한 종교는 없습니다. 특히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내용을 유독 강조합니다. 즉, 전생에 나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했었던가? 그렇다면 금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음 생에는 어떠한 형태로 다시 태어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 것만 해도 크게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해서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에 따라 생겨났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법문의 주제는 이 연기법과 관련한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 자신을 스스로 보라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십이연기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십이연기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를 말합니다. 이 열두 가지는 중생들이 전생ㆍ금생ㆍ후생을 윤회하는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무명ㆍ행ㆍ식은 전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돌고 돌았습니다. 즉 과거세에 생사윤회가 반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얼마나 돌았을까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므로 당연히 ‘육도(六道)’의 세계인 것입니다.

육도란 천상ㆍ인간ㆍ수라ㆍ축생ㆍ아귀ㆍ지옥으로 나눠집니다. 그 중에도 축생ㆍ아귀ㆍ지옥은 삼악취라고도하며 엄청난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반대로 천상은 이 중에 제일 좋은 곳입니다. 중생들이 복을 지으면 천상에 가고,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지옥도 간다고 하는데 바로 이때의 천상을 말합니다. 지금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나중에 지옥으로 가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무명’이라는 것은 밝음의 반대로, 어둡고 캄캄한 상태를 말합니다. 정원에 있는 나무를 가꾸려는 데 캄캄한 밤에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불을 밝히든지, 환한 대낮에 일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캄캄한 밤에 일을 하는 것처럼 알지 못하고 행동 하는 것이 바로 ‘무명’입니다. 즉, 중생이 어리석은 상태에서 하는 행동은 바른 결과를 낳지 못합니다. ‘무명’에 ‘행’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행’은 몸이나 입이나 의지로 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데, 행이 잘못되면 그 누구든 나쁜 결과가 나타나는 게 만고불변의 이치로서 바로 나 자신에게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어리석음으로 시작해 그릇된 행동으로 나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식’이에요. 이 같은 행동으로 인해 돌고 돈 결과가 바로 전생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생에 복덕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태중에 막 자리 잡을 때를 ‘명색’이라 합니다. 이후 태중에서 점점 사람의 형상을 갖추게 되는데, 이때 생겨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생각. ‘육입(六入)’입니다. 입으로는 음식을 받아들이고, 눈으로는 모양을 인식하고, 귀로는 소리를 인식하죠. 다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入(들입)’자를 써서 육입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촉’은 접촉한다는 뜻입니다. 육입을 통해 받아들인 것을 느끼는 겁니다. ‘수’는 전생에 지어 놓은 업보를 받은 모습입니다. 이 업보에 보면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마음가짐이 차이를 지니게 됩니다. 같은 음식인데도 내 입맛에는 좋고, 다른 사람은 못 먹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이 많은 사람은 이것저것 모두 잘 먹습니다. 식복이 많은 건데 복이 적어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마음 한 번 고쳐먹으면 잘 먹게 됩니다. 이런 것들도 자신이 지어 놓은 업보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들 복을 잘 지어놔야겠죠?

그 다음 ‘애’는 이성 지간의 사랑이 아니라, 중생심을 바탕으로 어리석게도 괴로움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말합니다. 오욕락에 도취돼 그릇된 훈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취’는 모은다는 뜻인데, 그릇된 잡척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재물과 명예욕이 있겠죠.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못쓸 짓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음 생에 고통 받을 업보가 생기는 겁니다. 내생애 받을 업보가 있다하여 ‘유(有)’입니다. 이 업보가 모여 다음 생에 태어날 내 모습이 정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업보를 받으려고 다음 생에 우리는 또 태어나는데, 바로 ‘생’입니다. 그리고는 ‘노사’, 늙어서 죽게 되는 거구요. 이게 바로 윤회의 모습이자 십이연기의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마음도 잘 닦아서 다음 생에도 부처님 계신 국토에 태어나서 부처님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인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지금까지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으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육도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삶을 위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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