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작복작했던 가을의 情
시대변화에 흐릿해져
그 시절 그 때 그리워

흔히 가을맞이는 풍요롭다고 한다. 아무래도 먹을 것들이 지천이기에 그럴 법도하다. 봄을 시샘하는 것들에 대한 표현도 많지만, 가을을 시샘하는 것은 햇볕일 게다. 절기상으로 가을은 음력 8월 7일 또는 8일에 든다. 가을은 입추(立秋)로부터 시작하지만, 이로부터 약 보름간은 덥고 볕도 매우 강하다. 본격적인 가을 느낌은 더위가 식고 일교차 심해지는 처서(處暑)를 지나서야 온다.

가을은 이슬이 풀잎에 맺히는 백로(白露)와 밤이 더 길어지는 추분(秋分)까지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가 찬이슬로 변하는 한로(寒露), 첫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에서 생기를 모두 마친다. 농부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지는 백로에서 추분까지, 시기로는 음력 9월이지만 양력으로 보면 10월말쯤 된다. 이때 한 해 가을걷이가 절정에 이른다.

절기문화 자료의 원형으로 꼽히는 〈농가월령가〉에 보면, “구월(九月)이라 늦가을이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느냐. 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을 재촉한다. 모든 산의 단풍은 연지로 물들이고, 울타리 밑 노란 국화는 가을 빛깔을 뽐낸다. 구월구일 좋은 날 꽃 부침개(花箭)로 천신께 제사 지내세. 절기를 따라가며 조상의 은혜를 잊지 마소. 보기는 좋지만은 추수가 더 급하다”하고 가을걷이 시기와 함께 벼 베기와 조와 콩 타작과 키질까지 그리고 목화솜 트기까지 남녀노소가 울력하듯이 바쁜 가을날의 풍경을 노래했다. 그리고 긴긴 겨울밤을 지키는 등잔에 켤 등유까지도 마련했으니 오죽했는가?

1905년 미국의 여류작가 오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를 다시 펼치지 않더라도, 가을의 상징 낙엽은 70여 가지가 넘는 색소를 가지고 보름간 계속 변신을 거듭하다 나무와의 마지막 이별을 고한다. 〈농가월령가〉에는 “시월(十月)은 초겨울이니 입동(立冬) 소설(小雪)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게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일을 먼저 하세”라 하여 겨울채비를 하는 일정이 가을맞이의 종착점이다. 지금과 다른 농경문화에서 겨울채비는 창호도 다시 고치고, 바람벽에 매흙을 바르면서 송송난 쥐구멍도 틀어막았다.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깍짓동 묶어세우고 땔나무를 쌓아 두어야 했다. 또 무 배추에 소금 간하여 만드는 김장이나 장아찌도 그 맛과 모양, 재질이 모두 달라 집집마다 입맛을 품평할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이러한 풍경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다. 김장한다고 사돈에 팔촌까지 모이는 집안도 거의 없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에 화전하나 부쳐 고소한 냄새나는 집도 찾기 어렵다. 다들 바쁘다고만 한다. 인간 스스로가 정해놓은 시간에 맞춰 뭐 그리 바쁘게도 살아가는 지 도대체 정(情) 붙일 곳이 하나 없다. 아침나절 꽃향기 묻어오는 가을바람에도 도무지 감각이 살아나지 않는다. 겨우 친한 동무 아니면 업무상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직장 상사들과 늦은 저녁 무렵에 전어 굽는 몇 집을 기웃거리다 머뭇거리고 돌아서기가 전부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접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니 그 허물이야 오죽하겠는가 마는 메밀 찧어 국수하고 온갖 전으로 음식차려 온 동네 사람들과 풍물패 불러 북치고 피리 불며 광대 줄타기를 구경하는 것도 이제 작은 허물이라 여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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