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다양한 악기 한자리에”

▲ 지하 1층에 마련된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의 메인 전시장 전경.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마을에는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 있다. 2003년 개관한 박물관에는 이영진 관장이 18년 간 115개국에서 수집한 2000여 점의 전통악기와 민속품이 전시돼 있다.

이영진 관장은 1989년 (구 소련 시절의)모스크바에서 근무하며 악기와 인연을 맺었다. 아시아 유목민족의 현악기 ‘두다르’를 구입한 것이 세계 악기 수집의 시작이었다. 그 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구입하거나 기증받은 악기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점차 수집품의 양이 많아지자 처음에는 민속악기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색 악기 전문 사이트를 운영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체험해 보고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프라인 전시장을 마련했다.

박물관 입구인 1층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지하 1층의 메인 전시실로 이어진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동아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남태평양 등 문화권별로 악기를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아프리카 전통악기 ‘발라폰’이 맨 처음 눈에 띈다. 함부로 두드려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으니, 이영진 관장이 어느새 채를 들고 와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주, 발라폰 치는 법을 소개했다.

“발라폰은 나무판 아래 조롱박 같은 공명관이 있어서 다양한 소리와 음을 만듭니다. 실로폰처럼 생겼죠? 혹시 실로폰이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진 악기인지 아세요? 이 문제를 내면 열이면 열 명은 다 틀립니다. 영어로 자일로폰(xylophone)이라고 하니까 다들 서양에서 만든 것으로 오해하고 있죠. 실제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그 전신을 찾을 수 있어요.”

이영진 관장은 전시실을 안내하며 수백 가지 악기 이름과 유래한 민족, 얽힌 이야기, 쓰임새 등을 자세하게 들려줬다.

“그리스 신화 속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론이 연주하는 리라와 유럽 천사의 상징인 하프도 그 원형은 아프리카에서 만날 수 있어요. 쿤디, 볼론 등 아프리카의 하프는 나무와 가죽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전쟁에 나서는 전사의 계급과 관련된 상징의 기능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민속악기가 가진 용도는 매우 다양했다. 호주 원주민 아보리진의 악기 ‘블로어(bullroar)’는 비밀 의식에 사용하던 것으로 끈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나무판을 공중에 휘저어 윙윙소리를 내 여자와 어린이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데 쓰였다. 볼리비아 지역에서 병에 걸린 야마, 염소, 돼지 등의 발톱을 가죽끈이나 막대에 연결해 만든 악기 ‘챠챠스(chachas)’는 흔들면 바람소리, 혹은 빗소리가 난다. 콜롬비아 지역의 ‘시누플루트(sinuflute)’는 펠리칸의 정강이 뼈로 만든 지공이 4개인 피리다. 이 밖에도 박물관에는 다소 충격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악기도 있다. 불행하게 죽은 사람의 무릎뼈로 만든 몽골 악기 ‘야산갈링’은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주술적 역할을 했고, 사람의 해골로 만든 ‘다마르’로는 몽골의 불교 음악을 연주했다.

“악기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종교의식, 의료, 통신, 전쟁 등 인간의 삶 전반에 깊이 관여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 서양 악기에만 익숙해 악기를 연주용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악기는 곡 연주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 악기들은 각 지역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악기의 설명과 함께 전통적인 의상을 갖춘 인형과 그림들이 함께 진열돼 있다. 또 박물관 곳곳에는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관람객들이 각 나라의 음악문화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각 공간별로 민속음악을 비롯한 국악·클래식 등의 공연을 개최하며, 악기와 관련된 교육도 무료로 실시한다.

이영진 관장은 “사람사는 곳마다 음악이 있고, 음악과 함께 있어온 악기들은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박물관의 다양한 형태의 악기를 통해 우리가 겪지 못한 삶을 만나는 작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26에 위치해 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가능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유치원과 단체(20인 이상) 3000원. 대중교통 이용 시 서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1번 출구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헤이리 예술인마을 6번 게이트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파주 외에 2009년 개관한 영월관도 운영 중이다. 문의 031)946-9838.  

▲ 아프리카 전통악기 발라폰(가운데)과 젬배.
▲ 유럽의 악기들.
▲ 동아시아의 민속 악기들.
▲ 동남아시아의 민속 악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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