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전국 사찰에서는 일제히 여름 수련대회를 가졌습니다. 일상에서의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수련대회에 참여한 불자님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되는 단기출가 과정의 수련회도 있습니다만, 모든 수련회의 마지막엔 보통 연비의식(燃臂儀式)을 치르는 게 관례입니다.

연비의식은 처음 치르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이 더욱 큽니다. 말 그대로 팔뚝을 태우는 의식이므로 떨리고 두렵기 마련입니다. 주사바늘도 두려운데 하물며 생살을 불로 지지는 고통이 여간하겠습니까?

연비는 본래 불문(佛門)에 들어와 험난한 구도여정을 겪을 출가 수행자에게 육신의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극복해내야 한다는 의미를 일깨워주는 엄숙한 출가의식입니다. 머리를 삭발하고 불문에 들기로 서원하는 초심자(初心者)의 팔에 초의 심지를 올려놓고 불을 붙여 태웁니다. 불법을 수호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어떠한 육신의 고통일지언정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재가불자들과 어린 불자들에겐 초의 심지를 쓰지 않습니다. 대신 불붙인 향을 써서 순간 따끔한 정도의 느낌만 들게 합니다.

연비의 유래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3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수행을 하고 있을 때 ‘신광(神光)’이라는 젊은이가 찾아와 법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젊은이의 방문을 무시했습니다. 때마침 산중의 찬바람을 타고 눈발이 흩날렸습니다. 살을 에는 바람과 눈발에도 신광은 꿈쩍하지 않고 달마대사의 제접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달마가 문을 열었습니다. “네가 눈 속에 오래 있으니, 무엇을 구하는가?” 신광이 말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와 어여삐 여겨 제도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달마는 “부처님의 위없는 도는 여러 겁을 부지런히 닦아도 행하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법을 구할 수 있겠느냐? 헛수고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신광은 지니고 있던 칼을 들어 한쪽 팔을 잘랐습니다. 붉은 피가 눈 위에 피어났습니다. 신광은 잘라진 팔을 들어 달마에게 바쳤습니다. 달마는 신광의 구도의지를 칭찬하곤 비로소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곤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내렸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일을 일러 ‘단비구법(斷臂求法)’ 또는 ‘혜가단비(慧可斷臂)’라 일컫습니다.

이 유래에 근거하면 ‘연비’는 ‘단비’를 간소화한 의례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불법을 구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전승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비를 받은 불자들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연비는 부처님에 대해 계를 잘 받들며 올바른 신행을 펼쳐나가겠다는 굳은 약속의 징표에 다름 없습니다. 이는 곧 불문에 귀의하는 초심자의 자기 다짐입니다. 따라서 초심을 내어 다짐했던 그 굳은 의지를 깨뜨려선 안 됩니다. 초심이 무너져 내리면 연비의 의미도 희석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초심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초심의 유지가 성공과 실패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우리 주변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옛날 페르시아 아바스왕은 어느 시골마을을 지나다 날이 어두워져 한 목동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청빈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목동의 모습에 반한 아바스왕은 그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가 관리로 등용했습니다. 관리가 된 목동은 이름이 알리베이로 열심히 나라를 위해 일했고 그의 성실한 태도와 총명은 마침내 그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들었습니다. 벼슬이 높아지자 자연 주위의 시샘과 모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를 쫓아내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중 그가 한 달에 한 번씩 꼭 자기가 살던 고향집에 다녀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알리베이는 고향집에 들를 때마다 꼭 가죽항아리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신하들은 그가 청렴한 척 하지만 사실은 남모르게 고향집 가죽항아리에 금은보화를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왕에게도 그런 듯이 고자질했습니다. 왕은 그간 신임해온 알리베이에게 화가 났지만 사실을 확인하고자 몸소 그의 고향집에 가 가죽항아리를 열어보았습니다. 거기엔 금은보화 대신 알리베이가 목동시절에 입던 낡은 옷 한 벌과 피리와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알리베이가 아바스왕에게 눈물을 머금고 말했습니다.

“저는 본래 목동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은혜로 재상이 되었지만 한시도 제가 목동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사라지려고 할 때마다 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고향집에 찾아 와 제가 입던 옷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알리베이의 말에 왕은 물론 모든 신하들이 감격했고 그의 아름다운 모습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초심을 잃지 않으면 남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연비는 초심의 신표(信標)입니다.

불자 여러분의 초심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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