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만개하는 연꽃에 佛心도 ‘활짝’

진흙 속 뿌리ㆍ수면 위 연꽃 ‘상구보리 하화중생’
경전서 극락국토 구성 요소, 부처님 가르침 닮아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다. 연못에서 자라는 연은 청초한 꽃과 둥글넓적한 잎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특히 불교사상을 오롯하게 담고 있어 불자들에게는 친근한 식물이기도 하다. 연꽃이 만개하는 8월, 불교와 연꽃의 인연을 통해 푹푹 찌는 무더위에 지쳐버린 마음을 달래보자. 편집자

흔히 매화ㆍ난초ㆍ국화ㆍ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라고 일컫는다. 주로 시문(詩文)과 묵화(墨花)의 소재로 사용되는 사군자는 각각의 특성을 더해 학식과 덕을 겸비한 사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군자가 아닌 꽃에도 군자가 있다. 바로 연꽃이다. 진흙 속에 자라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연꽃은 ‘화중군자’라고 불린다. 이러한 모습에 선조들은 연꽃을 보고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곳에 머물러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이라고 말했다. 꽃말인 청정ㆍ신성ㆍ청순한 마음 등이 그 모습과 무척 닮았다.

연꽃은 불교와 인연이 매우 깊다. 룸비니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한 싯다르타 태자가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나 떠받쳤다는 데서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됐다. 연꽃은 색에 따라 각각 백련ㆍ홍련ㆍ청련ㆍ황련ㆍ수련 등으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백련은 부처님을 상징한다. 특히 진흙 속에 뿌리를 두고 물 위로 솟아오른 줄기와 꽃은, 사바세계 중생들을 제도하면서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보살의 원력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연씨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싹을 틔워 ‘불생불멸’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51년 일본 도쿄대학 운동장에서 발굴된 2000년 전 연씨 3개 중 1개가 싹을 틔워 자란 ‘대하연(大賀蓮)’과 2009년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연씨가 700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阿羅紅蓮)’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런 연꽃이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 까닭은 〈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전하는 ‘염화미소(拈華微笑)’ 일화에 기인한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에 있을 때 범천왕이 금색의 바라화(연꽃)를 바치며 설법을 청했다. 부처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꽃을 대중에게 들어 보이셨는데 모두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단지 가섭만이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가섭에게 부촉하노라”고 말했다.

 

이 일화는 말이나 글을 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道)를 전한다(以心傳心)’는 의미로 선종(禪宗)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내용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일화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부처님이 성불하기 이전, 고행자 때의 이야기를 담은 〈본생경〉에는 연꽃이 부처님을 선정에 들게 한 요소로 등장한다.

〈본생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고행자 시절, 어느 연못에서 연꽃 향기를 맡고 있었다. 그러자 나무구멍에 사는 한 여신이 “한 송이의 연꽃도 주지 않았는데 그 향기를 맡으면 그것은 도둑질이다. 그대여, 그대는 향기 도둑 아닌가”라고 게송을 읊었다. 부처님은 이에 맞서 게송으로 답하지만 여신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지자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선정에 들었다.

또한 대승불교사상을 대표하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연꽃과 같다고 가르친다. 연꽃은 여타 꽃과는 달리 꽃과 열매가 동시에 존재[花果同時]하기 때문에 불교에서 묘법으로 설명된다. 천태대사는 〈법화경〉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연밥을 맺기 위해 연꽃이 핌(爲蓮故華, 진실을 설하기 위해 방편을 씀) △연꽃과 연밥이 함께함(華開蓮現, 방편으로 진실이 나타남) △연꽃이 지고 연밥이 드러남(華落蓮成, 근기가 익은 중생에게 방편을 없애고 진실만을 가르침)을 꼽았다. 그만큼 연꽃이 불교사상을 잘 담고 있다는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연꽃 모양의 부처님 좌대인 ‘연화대’, 불교의 인사법인 ‘연화합장’, 가사를 연꽃에 비유한 ‘연화의’, 극락정토를 뜻하는 ‘연화세계’ 등 연꽃은 불교용어에서부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찰 내 연못이나 연꽃을 표현한 단청,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열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 각자의 소구소원을 담아 매다는 연등까지 불교문화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꽃이다. 이렇다보니 연꽃은 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일체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다)’을 가장 잘 표현한 식물로 대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경전에서는 연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제개장보살의 103가지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을 담은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에는 △이제염오(離諸染汚,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물들지 않는다) △불여악구(不與惡俱, 잎 위에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계향충만(戒香充滿, 꽃이 피면 물속의 악취는 사라지고 향기가 가득하다) △본체청정(本體淸淨, 어떤 곳에 있어도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면상희이(面相喜怡, 모양이 둥글고 원만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온화해진다) △유연불삽(柔軟不澁, 줄기가 부드럽고 유연해 좀처럼 부러지지 않는다) △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 △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성숙청정(成熟淸淨, 만개했을 때 색이 곱다) △생이유상(生已有想,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으로 연꽃의 10가지 이로움[十種善法]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연꽃은 〈아미타경〉에서 극락국토를 구성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사리불아, 극락국토에는 7보로 된 연못이 있으니,8공덕수(功德水)가 그 안에 가득 차 있느니라. 연못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고, 사방의 계단은 금ㆍ은ㆍ유리(琉璃)ㆍ파리(頗梨)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또 그 위에는 누각이 있는데, 역시 금·은ㆍ유리ㆍ파리ㆍ차거ㆍ붉은 구슬[赤珠]ㆍ마노(馬瑙)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느니라. 연못 속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데, 그 크기가 수레바퀴만하며, 푸른색에서는 푸른 빛이 나고 황색에서는 황색 빛이 나고 붉은색에는 붉은 빛이 나고 흰색에서는 흰 빛이 나며, 맑고도 미묘한 향기가 나느니라. 사리불아, 극락국토는 이와 같은 공덕(功德)과 장엄(莊嚴)을 이루고 있느니라.

이외에도 〈무량수경〉은 ‘무량수불을 친견해 공경하듯 여러 보살과 대중에게도 이처럼 한다면 목숨을 마치고 극락국토의 7보 연꽃 속에 화생한다’고 전한다. 〈대루탄경〉은 아나파달다용왕의 아뇩달지를 설명하면서 연꽃을 ‘크기는 수레바퀴와 같다. 줄기의 크기는 수레의 바퀴통과도 같고, 찌르면 즙이 나오는데 그 색깔은 마치 젖 빛깔과 같고, 그 맛은 꿀과도 같다’고 한다. 〈법구경〉과 〈잡아함경〉에서는 중생이 연꽃의 초연함을 닮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잘난 체함을 버려 남은 교만 없애면 물에 핀 연꽃이 깨끗한 것과 같다. 이것저것의 차별 버리기를 배우면 그는 예전보다 나아졌음을 알리라. 〈법구경〉

마치 깨끗한 물에서 피어난 연꽃이 청정하고 티 없으며 더러움 없이 햇빛을 따라 피어나면 그 향기 그 나라에 진동하듯이 앙기국(央耆國) 밝게 드러나는 것이 마치 공중의 해와 같아라. 〈잡아함경〉

한편 고대 그리스신화에는 연꽃 열매를 먹으면 현실의 괴로움을 망각하고 즐거움만을 느낀다는 말이 전한다. 긍정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일종의 마약 같은 열매로 설명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오디세우스 일행은 항해 도중 폭풍우를 만나 제르바라는 섬에 도착한다. 오디세우스는 섬에서 물을 구하러 간 부하들이 돌아오지 않자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섬 원주민들이 준 연꽃 열매를 씹으며 희희낙락하는 일행을 발견한다. 원주민들은 매일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고민 없이 열매만 씹으며 살고 있었다. 이에 오디세우스는 병사들을 모두 끌고 서둘러 섬을 떠났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표현하는 연꽃을 보며 나의 불심은 얼마나 피었는지, 덥다는 핑계로 옆 사람에게 짜증을 내진 않았는지 돌아보자.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