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한 처신이 망신을 부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 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었을까요? 며칠 전 경북의 한 지방자치단체 의회 의장이 식당에서 소나무 분재 한 그루를 훔친 혐의로 입건된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샀습니다. 그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들른 식당에서 1미터 가량 크기의 소나무 분재가 마음에 들자 식당 주인에게 말도 없이 가져가 자기 집 화단에 심었다가 절도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자치단체의 의정(議政)을 책임진 신분으로 지역민들의 입방아에 올랐음은 물론 망신을 톡톡히 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자기 행동을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강한 자에게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하는 태도로 처신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기본적인 처세술의 외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처세술은 인격과 직결됩니다. 처세가 경솔하고 올바르지 않으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처신이 늘 삼가고 단정하면 존경을 받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과 관련해 경책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채근담(菜根譚)〉에선 ‘지신불가경(持身不可輕)’이라 하여 “군자라 하면 마땅히 몸가짐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몸가짐을 가벼이 하면 주변에 휘둘려 여유롭고 침착함을 잃게 된다고 경계합니다.

불교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처신을 늘 경책하도록 당부하는 가르침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고려시대 후기 야운(野雲) 스님이 쓴 〈자경문〉이 대표적입니다. 〈자경문〉에선 열 가지 경책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첫째,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절대로 수용하지 말라. 둘째, 내 것을 아끼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셋째,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가볍게 하지 말라. 넷째, 좋은 벗과 친하고 나쁜 벗을 사귀지 말라. 다섯째,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자지 말라. 여섯째,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일곱째, 재물과 여자를 대하거든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여덟째, 세속 사람과 사귀어 같은 대중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하지 말라. 아홉째,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열째, 대중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평등하게 하라가 그것입니다.

실제로 이 〈자경문〉에 나오는 열 가지만 제대로 지켜도 세간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자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몸으로 살생, 도둑질, 간음을 짓습니다. 입으로는 거짓말과 독설과 이간질과 모략중상으로 깊은 상처를 낳습니다. 뜻으로는 탐냄과 시기와 질투와 분노로 사람들간 끊임없는 갈등과 분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명재상 홍언필(洪彦弼, 1476~1549)은 몸가짐이 검소하고 늘 법도를 엄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분에 넘치는 화려한 생활은 절대로 금하였습니다. 아들 홍섬(洪暹)이 처음 판서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나이가 마흔에 불과한 데 한 관서를 책임지는 판서가 되었으니 여간 기쁘지 않았나 봅니다. 당시 높은 벼슬아치는 초헌을 타고 벽제를 하였는데, 거리에 행차할 때 종이나 나졸들이 가마 앞을 달리면서 소리를 외쳐 주위 사람들이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홍섬이 판서가 되어 이 초헌을 타고 벽제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 송씨부인이 대견스럽게 여기고 이를 남편에게 자랑삼아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홍필언은 크게 노하여 홍섬을 부른 뒤 존대말로서 꾸짖었습니다. “대감이 판서가 되셨구려. 그렇다면 오히려 더욱 삼가고 삼가서 차는 것이 기울어짐을 두려워해야 할 것인데, 어찌 초헌을 타고 돌아다닌단 말이오? 어디 초헌을 다시 타보시오. 벽제 소리 크게 울리며 마음껏 돌아다녀 보시오.” 홍섬은 아버지의 엄한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시키는대로 초헌 위에 올라 벽제를 하면서 자기 집 마당을 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언필은 뒷짐을 지고 맨발로 미투리 신발을 신고서 그 뒤를 묵묵히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홍섬은 실로 몸 둘 바를 몰라 이후론 언행을 조심하여 허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홍섬은 훗날 영의정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가벼이 처신하는 사람과 매사를 진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가벼이 처신하는 사람은 소리가 요란하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진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소리가 없으나 만인의 눈길을 받습니다. 〈숫다니파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은 물과 얕은 물은 그 흐름이 다르다.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깊고 넓은 큰 바다의 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른다. 부족한 것은 시끄럽지만 가득한 것은 조용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반쯤 채워진 물그릇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가득 찬 연못과 같느니라.”

세간의 망신을 사지 않고, 또한 주변의 조롱을 받지 않는 방법이란 “자기 몸을 스스로 닦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였습니다. 몸가짐을 신중하고 유연하게 하다 보면 깊은 물의 바다처럼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님들의 쉼 없는 정진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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