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웃음’, 일상에서 ‘자비’ 실천 ‘참 사람’

▲ 김흥국 씨는 불자연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기적으로 법회를 볼 수 있도록 불교계가 지원해 줄 것을 당부했다.

불자 어머니 “베풀며 살라” 가르침 새겨
2000년 장학재단 설립 16년째 초등생 지원
방송국 인근 연예인 전법도량 조성 염원

1980년대 말 ‘호랑나비’로 가요계를 흔들었던 불자가수 김흥국 씨. 당시 10대 가수에 선정됐던 그는 요즘도 입버릇처럼 ‘왕년의 10대가수였다’고 자랑한다. 그는 가족을 제외하고 ‘불교’, ‘축구’, ‘해병대’ 이 세 가지로 산다고 공언할 정도로 확고한 종교관과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불교, 축구, 해병대 중 어느 것이 우선입니까”라고 물었다. 돌아온 그의 답은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였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질문과 다름없단다. 그는 11살 때 축구를 먼저 알게 됐고, 그 다음에 불교를 만났으며, 혈기왕성한 20대에 해병대에 입대하며 인연을 맺었다.

父 위패 사찰 봉안 후 불교 만나
“누구에게든 자기에게 맞는 종교가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 맞는 종교는 불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13살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살이에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농사를 짓고 살았던 아버지가 그의 나이 13살 때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서울 보문동의 한 사찰에 아버지의 위패를 모셨다. 그 인연으로 어린 흥국은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불교와 가까워졌다. 절에 가는 게 마냥 좋았다. 부처님도 좋았다. 무섭게 생긴 사천왕상을 봐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불경을 옆에 끼고 공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를 따라 다니면서 스님의 법문도 듣고, 찬불가를 들으며 그의 신심은 깊어졌다. ‘부처님의 법이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어렸을 때, 딱 한 번 아버지와 영화를 봤다. 최근에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떠올랐단다. 2남 4녀의 막내였던 그였기에 아버지와는 거리감도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6남매를 키우기 위해 행상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6남매를 키우셨으니 고생이 오죽 하셨겠어요. 제가 12년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며 자식 둘을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우리 어머니 정말 대단하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모진 환경 속에서도 오직 자식들만 바라보고 산 어머니는 그에게 늘 “살생하지 마라, 자비심을 갖고 살아라.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너보다 더 힘든 사람 있으니 그들에게 베풀고 살아라”고 가르쳤다.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다. 그는 “어머니께서 삶에 지침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스님으로부터 들은 부처님 말씀을 나에게 들려주신 거였다”고 회고했다. 

어머니 ‘초심잃지 말라’ 당부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가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한 계기가 됐다. 특히 어머니는 그에게 “네가 힘 있을 때 도와줘야 한다. 초심을 버리지 말아라. 지금 이렇게 고생해서 네가 잘 되면 옛날 생각 버리고 너만 잘난 것 같이 생활하면 안 된다. 너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된 거니까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줘라”고 말씀하셨단다. 어머니의 말씀은 사람냄새 나는 ‘호랑나비 김흥국’을 있게 한 삶의 신조가 됐다.

그는 2000년 2월 자기의 이름을 내건 김흥국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뜻에서였다. 이후 매년 연말 장학재단과 전국 시ㆍ군ㆍ구청장 및 지역 교육청ㆍ초등학교장 추천을 통해 장학생을 모집한다. 가정형편을 고려해 장학금 수혜자를 최종 선발한다.

그의 장학사업도 올해 16년째다. 그는 올해부터 장학금 지급 인원을 2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친구와 스님 등 여러 지인이 장학사업에 도움을 주겠다고 선뜻 나서 보탬이 되고 있다. 장학사업 이외에도 고아원ㆍ양로원에 생활비 지원, 청소년상담, 음반ㆍ출판 사업 및 공연 기획, 장학기금 모금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흥국 씨는 “주위에서 오랫동안 혼자 힘으로 장학사업을 하는 걸 알고 조금씩 보태겠다고 한다. 그래서 장학생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되도록 혼자 힘으로 하려고 한다. 열심히 벌어서 나누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장학재단을 언제 사단법인화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150여 명. 한 번은 한 학생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 편지를 받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단다. 편지를 받다보니 조건없이 주고자 했던 자신의 생각과 달리 생색을 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학금 수여식 때 아이들에게 “아저씨가 돈이 많아서 주는 게 아니다. 나도 어린 시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절대 편지 같은 것 하지마라. 너희가 열심히 공부해서 모범적인 학생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단다.

어떤 이들은 1년에 한 번 아이들과 모임을 했으면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긴 하지만, 생색내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단다. 그리고 아이들이 불편할 수도 있어 만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잘 되면 그것이 곧 그의 보람이기에.

“눈물 날 정도로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번은 학생의 부모가 와서 밥을 같이 먹고 나서 ‘연예인이 자기 이름 걸고 장학사업 하는 것 처음봤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다시 봤다’는 말을 듣고 힘이 났다”고. 그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아이들의 부모는 그에게 힘을 주는 셈이다.

그의 불교 사랑은 연예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방송을 하다보면 종교 문제로 약간의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그는 “연예계에서 종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지혜롭게 잘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따르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아주 긍정적이고, 힘들어도 표현을 잘 하지 않아요. 인생을 즐깁니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면 힘듭니다. 내가 힘들다고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도 힘들 것이고, 내가 행복하면 다른 사람도 행복하지 않겠어요? 내가 방송을 즐기지 않고는 살아남기도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행복해야 많은 분들이 김흥국 때문에 살맛이 나고, 김흥국 때문에 웃게 되고, 김흥국 때문에 힘들어도 살맛나는 세상 아니냐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제겐 그런 사명감이 있습니다.”

TV와 라디오 속 연예인 김흥국과 일상에서의 불자 김흥국의 삶에는 차이가 있었다. 방송에서 때로는 굴욕도 불사하는 가벼움과 실생활에서의 진중함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그다.

불교를 사랑하기에 불교계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연예계에 알려지지 않은 불자 연예들이 많은데 그들을 이끌어 줄 스님과 사찰이 없다는 것. 

불자연예인 지원해 키워야
“불교계에서 연예인 포교를 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오래 전부터 스님들을 만나면 연예인 포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연예인 법당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상암동 인근이든, 어디든 가칭 ‘연예인 전법도량’으로 지정해 연예인들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법회를 보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됩니다. 어느 종단이든, 스님이든 원력을 가진 분이 나타났으면 합니다. 그냥 이렇게 놔둬서 될 상황이 아닙니다.”

오랫 동안 불자연예인으로 연예계 생활을 해 온 그의 말이기에 더욱 간절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불교계에서 불자연예인들이 인기가 있을 때에만 반짝 관심을 갖고, 인기가 사그라들었을 때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데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불자연예인들을 일회성으로만 활용하면 안 된다. 그러면 연예인들이 실망해 불교와 멀어지기도 한다”면서 “불교계에서 불자연예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도와주고 키워야 한다. 불자연예인 전법도량을 지정해 신경 써 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불자가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양로원과 교도소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쳤던 그는 현재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서 재능기부도 한다. 함께 어울리고 곁에 있어주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즐거워한단다.

힘든 연예계에서 지금도 꿋꿋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 돌아가신 부모님과 부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불자가수 김흥국.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도 세월따라 희끗희끗 변해가고 있다. 콧수염이 하얗게 새기 전에 그의 간절한 바람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길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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