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재정난에 허덕이다 폐사 위기

글 싣는 순서   상. 정기적 시주 문화 정착돼야 한다
                       하. 시주에서 보시, 그리고 기부로

한국의 사찰들이 재정난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그동안 진행돼 온 불자 인구 감소에 따른 시주금 감소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가 불거지면서 관람료 사찰들의 수입 감소 등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부 사찰의 경우 분담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쌀을 살 여유조차도 없는 곳, 하루에 신도 한 명 오지 않는 곳도 있다. 부처님오신날 불자들이 낸 연등공양비로 1년을 사는 사찰들이 대부분인데 이 또한 여의치 못한 곳도 많다. 그러다보니 일부 지역사찰은 스님 혼자 기거하는 토굴로 전락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사찰로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찰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데 있다. 도시보다 농어촌, 산골로 갈수록 그 심각성은 더해진다. 시주문화의 변화를 통한 안정적인 사찰 재정의 확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사찰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 편집자 註 -

신도·시주금·관람료 수입 줄어
지방사찰, 스님 토굴로 전락

사찰 역할은 커녕 폐사될 판

대부분의 사찰들은 불자들의 시주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지역의 한 사찰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한 불자가 불전함에 시주금을 넣고 있는 모습.“월 시주금이 어느 정도 되냐구요? 쌀도 못 사먹을 정도입니다. 이러다간 폐사 되겠어요.”

전북 완주 ○○암 주지 A스님의 말이다. 이 사찰에는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초하루 법회 때도 주지 스님과 안면 있는 몇몇 신도만 찾아온다. 새로운 얼굴이라곤 가끔 찾아오는 우체부 밖에 없다. 이 지역에는 20여 가구가 있지만 모두 노인들인데다 장기적 경제 불황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전무한 실정이다. 인근의 교회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나마 주지 스님이 외부 소임을 맡아 받은 보시금으로 근근이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곳들은 지역 주민에게 조차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속칭 ‘왕따' 취급을 받고 있다.

주지 A스님은 “재정이 어렵다 보니 당장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 자동차를 팔아 운영비로 쓰고 있다”며 “지역 사찰에서 주지를 맡고 있는 도반 스님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별반 다르지 않고, 사찰 기능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푸념을 털어놓았다. A 스님에 따르면 도심 대형 사찰의 부전만 살아도 월 300~400만원 정도 보시를 받는데 이는 지역 사찰의 1년 운영경비에 해당한다. 그러다보니 정기적 시주금 확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 보은 속리산의 경우 관광객 숫자도 1970~80년대 연간 150만 명이던 것이 현재는 6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영향으로 법주사도 시주금과 문화재 관람료가 줄어들어 살림살이도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보은군은 한때 12만 명에 달하던 인구가 1980년 이후 무려 8만 명이나 급감해 2005년 12월 기준 3만 7천여 명 정도로 확 줄었다. 의성 고운사, 고창 선운사, 제주 관음사, 순천 송광사 등도 교구본사임에도 재정이 어려운 사찰들로 알려져 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대형 사찰이 이런 상황이니 외딴 지역에 위치한 산사들의 상황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북한산 00사는 주지 스님이 바뀌면서 신도가 감소하고 시주금도 줄어들어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경우다. 그 이유는 전 주지 스님에 비해 현 주지 스님의 포교활동 노력이 부족했고, 더군다나 주지 스님이 사찰을 자주 비워 신도들의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심 포교당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일산에 위치한 한 포교당은 설립 초기부터 신도확보는 물론 재정 마련을 못해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는 게 포교당을 운영했던 스님의 전언이다.

특히 강원도와 전라도 지역 사찰들은 타 지역 신도들에 의지해 재정을 꾸리는 경우가 많아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조계종의 한 중진 스님은 “사찰이 위치한 지역에 기반을 둔 사찰들은 그나마 신도수나 시주금이 대폭 줄지는 않았지만, 타 지역 불자들에 의존하는 사찰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정기적 시주 제도 확보한 곳 없어

2005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불교신자는 1천 73만 여명으로 지난 1995년의 1천 32만 여명보다 3.9% 증가했다. 전체 인구 구성비로는 22.8%로 10년 전보다 0.4% 하락했다.

이에 앞서 한국갤럽이 2004년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불교는 월 1회 이상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불자는 전체 불자의 21% 수준으로 약 218만 명으로 나타났다. 그 외 79%는 가끔 유명사찰로 여행가거나 부처님오신날 사찰을 찾는 정도로 정기적 신행활동을 하지 않는 잠재적 불자층이다. 불자들의 1년간 시주 횟수는 49.3%가 2회 이하, 개신교인은 46.2%, 천주교인은 15.3%가 십일조를 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보니 천도재비, 기도비, 인등비, 연등공양비 등 각종 비정기적인 시주금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한국의 사찰들은 불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잠재적 불자층의 비정기적 시주에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관태 사찰경영컨설팅 살림 대표는 “부정기적 신행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 현실에서 사찰의 재정 안정은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스님들은 시주금이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해 변동폭이 큰 반면 사찰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고정적으로 지출돼 어렵다고 토로한다. 신도 감소와 잠재적 불자층이 늘어날수록 시주금 감소로 직결돼 사찰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타 종교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태고종 열린선원 주지 법현 스님은 “사찰의 수입이 아무리 비정기적이라 하더라도 스님들은 대략의 1년 수입을 예상할 수 있다”며 “비정기성을 이유로 포교나 사업이 어렵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어렵다는 것은 결국 스님들의 게으름이나 무능에 대한 각성이 없는 핑계”라며 “신도들이 힘들게 내는 작은 정성을 철저한 계획 하에서 운영하며 포교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도들의 마음자세도 고쳐야

사찰에서 정기적으로 시주금을 내라고 해도 신도들이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불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광주에 사는 범정택(30) 씨는 “사찰의 각종 행사, 기도, 불공, 불사 등에 시주를 하고 있는데 굳이 정기적인 시주금을 걷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정기적 시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는 신도들의 시주·보시하는 마음자세 문제로도 연결된다. 순수한 의미의 시주·보시가 없다는 것이다. 불자들이 내는 대부분의 시주금을 들여다보면 각종 재비, 기도비 등 종교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지불하는 사용료 성격을 띠고 있다.

간혹 일부 스님들이 말하는 ‘목탁치는 노동자'라는 한숨 섞인 푸념이 가슴에 와닿는 대목이다.

재정 비공개, 신도에 신뢰감 못줘

그동안 사찰 운영은 ‘끼니 거르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으면 잘 산다' 식이었다. 더욱이 청빈한 수행자라는 이미지를 간직해온 스님들은 사찰 재정 문제만큼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 드러내길 꺼려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장을 지낸 강지혜(24) 씨는 “스님들의 비전문성과 유동성을 감안해 신도회 중심의 투명한 시주금 운용이 선행돼야 한다”며 “사찰에서 재정의 안정화와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회비와 같은 정기 보시금을 받는다면 낼 용의가 있다”고 말해 재정 투명화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간혹 유명한 선사나 율사 스님들이 입적하면서 엄청난 유산을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최근 일부 사찰 주지 스님들의 경우 고급 외제차를 타거나 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운영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띤다.

이에 대해 충남지역 사찰에 다니는 최성락(63) 씨는 “스님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는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데, 대외 활동을 하는 직책있는 스님들의 경우는 그나마 이해한다”면서도 “스님들은 기본적으로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설법연구원장 동출 스님은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시주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모습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소박하게 보이는가?”라며 “스님들이 사회인들보다 검소하지 않으면 신도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스님은 “스님들이 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상황에서는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스님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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