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보복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6년 75건이 발생한데 비해 2013년엔 396건의 보복범죄가 자행돼 무려 5배 이상의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나는 보복은 도로운전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빗길의 고속도로에서는 차선 양보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가 탄 차량을 중앙선 반대편으로 밀어붙이며 위협하는 보복운전이 발생해 경찰이 해당 운전자를 입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이렇듯 범죄자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상응부경전〉에선 “화를 내는 사람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고 끝낼 수 있어야 강적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분노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당신 자신의 마음까지 분노로 물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빨리 깨닫고 침착해지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도 상대방도 마음을 다치지 않게 된다. 당신이 상대의 분노를 온화한 마음으로 살포시 받아들일 때 서로간의 분노는 잦아들고 마음도 치유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정도를 넘어선 지나친 복수를 일컫는 말로 ‘굴묘편시(掘墓鞭屍)’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입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의 태자 건의 태부이자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오사가 건의 소부였던 비무기의 시기로 평왕에게 참소당할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평왕은 오사와 큰 아들 오상을 죽이고 자서까지 죽이려 하였으나, 재빨리 몸을 피해 오나라로 망명하였습니다. 자서가 훗날 뜻을 이루어 초나라로 쳐들어갔는데 그때는 이미 평왕은 죽어 무덤에 안장됐습니다. 평왕은 생전에 이미 자서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를 만드는데 동원된 일꾼들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무덤을 찾지 못한 자서는 그 작업에 참여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의 제보로 무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철장(鐵杖) 300대를 치며 그간 맺힌 분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서의 이런 복수를 크게 힐책하며 나무랐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고 경책하셨습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행위는 서로의 보복만 계속 되풀이하는 악순환의 고리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육도집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장수왕에겐 장생(長生)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자비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태평성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포악한 왕은 이를 시기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습니다. 신하들이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며 마주 나가 싸우기를 청하자 왕은 그들을 말린 뒤 태자 장생에게 말했습니다. “저 이웃나라 왕은 우리나라를 가지고 싶어 한다. 내 신하들은 나 한 사람을 위해 선량한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케 할 것이다. 나는 차라리 이 나라를 저 왕에게 주어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리라.”

왕과 태자는 성을 빠져나와 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웃나라 왕은 장수왕을 잡기 위해 황금 천 냥을 걸었습니다. 어느 날 장수왕은 성문의 수위에 붙잡혀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장생이 나무꾼으로 변장하고 부왕 가까이 다가가자 왕은 그를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너는 내 마지막 교훈을 명심하라. 원한을 품어 그 재앙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

장생은 아버지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어 깊은 산에 들어가 숨어 지냈습니다. 그 뒤 장생은 원수를 갚으려고 포악한 왕의 사랑받는 시종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사냥을 나갔다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사흘간 헤매게 되었습니다. 왕은 주림과 피로에 지쳐 허리에 찼던 칼을 장생에게 맡기고 그의 무릎을 벤 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장생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칼을 빼 왕의 목을 치려다 문득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는 부왕의 유훈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들었던 칼을 자루에 꽂았다 꺼냈다 세 번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 왕이 잠에서 깨어났고 장생은 왕에게 사실을 밝혔습니다. 왕은 장생의 말을 듣고 깊이 뉘우쳤습니다. 왕은 장생의 손을 잡고 숲에서 나와 나라를 장생에게 물려주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원한을 용서로 푼 이 이야기는 화쟁(和諍)의 불교정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자비경〉에선 더욱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살아 있는 모든 생명과 존재에 대해선, 어머니가 하나 뿐인 외아들을 생명을 걸고 보호하듯 일체의 생물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더불어 공존하는 지혜를 가질 때 세상은 보다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분노 대신 자비로 세상을 대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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