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사람을 존경한다. 감히 가볍게 보거나 오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닦아 마땅히 성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하라고 가르칩니다. 평등하게 대하라는 가르침은 생명 있는 존재들을 천대하거나 무시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세에 상불경(常不輕)보살이란 이름으로 인행(忍行)을 닦았습니다. ‘상불경’이란 ‘다른 존재를 무시하거나 천시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상불경보살은 재가자나 출가한 이를 가리지 않고 만날 때마다 절을 올리고 “내가 당신을 공경하고 감히 가벼이 여기지 않노니 마땅히 보살도를 수행하여 반드시 성불하게 되리라.” 말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이 때로는 욕하고 해하려 하더라도 상불경보살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늘 이와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에서는 상대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가 하면 존재감조차 무시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이 이어지고 궁극엔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지난 해 세간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광주 세 모녀 살해사건도 범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우발적인 충동을 참지 못해 일으킨 일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정조는 어렵게 왕좌에 오른 인물입니다.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지만 밤새 책을 읽으며 두려움과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는 차별하는 마음 자체를 정신병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백성에 대해 신분적 차별을 금기시하고 인간으로서 존중했습니다. 이러한 정조의 생각은 능력에 따른 고른 인재등용으로 나타났습니다. 벼슬 진출에 있어서 서자라고 막아놨던 이전의 제도를 철폐하고 ‘서자 벼슬진출법’을 제정해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장했습니다. 지금에도 이름을 전하고 있는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등이 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백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원 화성 축성시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백성이 발생하지 않게끔 전면 임금 노동을 실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10년을 기한으로 했던 수원 화성 축성은 공기를 대폭 줄여 2년 만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정조의 차별정책 철폐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상업을 천시하던 시대에 소수 재벌에게 특권을 주는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인위적인 상거래를 만들었습니다. 농업과 상업혁명을 동시에 추진해 나라의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것입니다.

차별에 대한 그릇됨을 일깨우는 예화는 비단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시대 있었던 또 다른 이야기로 여러분도 한 번쯤 들었을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한 선비가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로 앞 밭에서 늙은 농부가 두 마리 소에 쟁기를 매어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소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선비가 농부에게 궁금한 듯 소리쳐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놈이 더 기운이 셉니까?” 그러자 농부는 일손을 멈추고 일부러 밭가에서 나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왼쪽에 있는 소가 더 힘이 세다오.” 선비가 이에 “그냥 저기서 큰 소리로 대답해도 될 것을 뭐 비밀스런 말이라고.” 라며 대꾸하자 농부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자기가 남보다 못하단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 또 칭찬받은 소는 괜히 우쭐대며 상대방을 얕볼 수도 있습니다.” 선비는 농부의 말에 감명을 받아 평생토록 남을 무시하거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심보감〉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명심보감〉 ‘정기편(正己篇)’에서 태공은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자기가 크다고 작은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용기를 믿고 적을 가볍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만 잘났다하고 남을 업신여기면 안 된다. 아무리 잘난 체하고 자기가 제일인 척해도 마음속에 실제로 얻은 바가 없으면 마치 낡아빠진 배와 같다. 그러므로 벼슬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마음을 너그럽게 써야 하고 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존심을 갖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자존심을 없애야 참다운 도가 이루어질 것이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진실한 복이 돌아올 것이다. 교만을 부리다가 좋은 지혜 잃었으며 잘난 체만 하다 어리석음 키웠도다. 다른 사람 업신여겨 백발이 되고 보니 병든 이 몸 외로울 때 돌봐줄 이 누구인가?”

이 말은 출가사문이 필독하는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요즈음 ‘갑(甲)질’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위가 높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거꾸로 약자를 상대로 횡포를 부리는 행위를 풍자하는 말입니다. 이를 빗대 ‘갑’에 의해 사회적 약자인 ‘을’이 고통을 겪는 관계를 ‘을사(乙死)조약’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가 횡행하면 우리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차별받지 아니하고 동반자의 관계로 나아갈 때 불국토를 만들 수 있습니다. 불자들이 먼저 실천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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