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에티오피아 북동부 작은 고원마을에 설치된 ‘와카워터’가 화제입니다. ‘와카워터’는 물방울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달리 매일매일 멀리 떨어진 더러운 저수지에서 길어 온 물을 먹어야 했습니다. 물엔 동물 배설물이나 기생충이 섞여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선 이런 물을 먹고 어린 아이 5만여 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원지대라서 땅을 파도 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와카워터를 창안한 연구팀은 이러한 환경에서 기존의 식수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공기에서 물을 만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와카나무에서 얻게 됩니다. 와카나무는 키가 20미터가 넘고 열매는 식량이 되며 넉넉한 나무그늘은 휴식처로 손색이 없는 에티오피아 자생군(自生群)입니다. 모티브는 와카나무에서 얻었지만 와카워터의 주재료는 대나무가 이용됐습니다. 와카워터는 탑입니다. 바깥을 대나무로 격자모양을 만들어 엮은 나선형 탑으로 안쪽에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든 오렌지색 그물을 둥그렇게 둘러쳤고, 그물 아래엔 물받이 그릇을 달았습니다. 공기 중 수분이 그물망에 붙어 물방울로 맺히고 아래쪽 그릇에 모아진다고 합니다.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대나무가 쓰여진다는 이 소식에서 삶의 지혜가 드러나 보이고 있음을 새삼 느껴봅니다.

대나무는 불교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마가다국 왕사성 대나무 숲에 지어진 죽림정사는 불교 최초의 가람입니다. 또 대나무의 속이 빈 것과 위 아래로 마디가 있는 특징을 불교에선 무심과 절도 있는 생활태도로 연계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의 가르침은 독립의 자유를 지향하는 지혜로운 이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죽순이 다른 것에 잠겨 붙지 않는 것처럼 독립적으로 나아가 전법을 널리 행하라는 당부인 것입니다.

대나무와 관련된 가르침은 고려시대의 대표적 문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월등사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에도 나옵니다. 화산 월등사 서남쪽에 자리한 죽루에서 노주지 스님이 손님들을 모아놓고 주변 대나무 숲을 가리키며 대나무의 좋은 점을 일러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마다 제각각 “대나무의 순은 좋은 먹거리로 솥에 삶아 내거나 풍로에 구워놓으면 향기가 좋고 맛이 연하여 기름이 돌고 배는 살이 찐다”거나 “휘어서 만들면 광주리와 상자가 되고, 가늘게 쪼개 엮으면 문을 가리는 발이 되며, 엷게 쪼개서 짜면 마루에 펴는 자리가 되고, 또 쪼개서 다듬으면 고리짝과 도시락과 술을 거르는 용수는 물론, 소와 말을 먹이는 여물통과 대그릇과 조리 따위가 된다”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털어 놨습니다.

그 중 가장 아는 체 하는 이가 나서 “대의 키가 천 길이 되는 것을 심이라 하고, 둘레가 두어 길이 되는 것을 불이라 하며, 그 머리에 무늬가 있는 것은 집이라 하고, 그 바탕이 검은 것은 유라 하며, 가시가 돋힌 것은 파라 하며, 털이 있는 것은 공이라 한다. 공주에서 나는 공, 기주에서 나는 적, 강한에서 나는 미, 파유에서 나는 도, 여포에서 나는 포, 원상에서 나는 반죽·운당·막야 같은 것들이 있다. 그 명칭과 모양이 모두 생산되는 지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바다가 얼도록 추워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쇠가 녹도록 더워도 마르지 않는다. 새파랗고 싱싱하여 사철 변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인은 대를 숭상하며, 군자는 대를 본받으려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그 뜻을 바꾸지 않으니 대나무의 지조가 이러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스님은 흡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때 식영암(息影庵)이 말했다.

“그 맛이나 재목, 혹은 운치나 지조 때문에 대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겉만을 알고 그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나무가 처음 땅에서 돋아날 때부터 단번에 쑥 자라 버리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 하루아침에 문득 깨달음이 향상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대가 늙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보면 후천적으로 노력한 사람의 힘이 차츰차츰 증진해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대가 속이 빈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비운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으며, 대가 바깥쪽이 곧은 것을 가지고 보면 사람의 실상이 어떠한지 얘기할 수 있다. 대의 뿌리가 용으로 변화하는 것은 부처님이 될 수 있음의 비유가 되며, 열매로 봉황을 먹게 하는 것은 남을 유익하게 하는 행위다. 스님께서 대를 좋아하는 까닭은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노스님이 이에 화답했습니다.

“정말 의미가 깊도다. 그대야말로 대나무의 유익한 친구로다.”

이인로는 마침 그 자리에 함께 했다가 이 대화를 듣고 〈월등사죽루죽기〉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대나무엔 깊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뜻의 반영일지 모르나 불교의 선가(禪家)에서는 대나무를 깎아 만든 죽비(竹毗)가 수행자를 경책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나무는 곧 무명을 깨뜨리는 지혜도구인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대나무가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듯이 우리 삶에서도 대나무를 통한 지혜가 널리 증득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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