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9(2015)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을미년 양띠 해다. 양은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무리를 지어 살면서도 성격이 온순해 거의 싸우는 일이 없다고 한다. 화합공동체를 지향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양은 대립과 갈등을 불식시키는 데 있어서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키워드’의 하나다.

실로 우리 사회는 지난 한 해도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전 국민을 비탄에 잠기게 했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사건을 비롯해 수원 토막살해사건 등 국민을 경악케 한 사건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계의 위협에 몰린 나머지 추운 겨울날 수십 미터 높이의 굴뚝과 옥외전광판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한 근로자들은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대한항공 회항사건 등은 우리 사회의 분란과 갈등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들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앞에서 과연 종교의 본분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깊은 성찰이 요구되기도 했다.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이유가 ‘전법도생(傳法度生)’에 있다고 한다면 불교의 역할은 보다 분명해진다. 중생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불교가 해야 할 일은 사건 사고를 줄이도록 기여하는 일이다. 무명을 타파하며 탐진치(貪嗔癡) 삼독심(三毒心)을 없애도록 가르침을 펴는 일이 결코 소홀히 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이야말로 기성세대의 추악한 탐욕이 빚어낸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면 이러한 탐욕을 줄이도록 가르침을 베푸는 게 불교의 역할이다. 살생도 부족하여 시체를 토막 내고 장기를 도려내는 극악무도한 범행을 막기 위해선 연기설(緣起說)에 따른 업보(業報)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널리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숫타니파타>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말씀하신 것과 상통한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존엄성(尊嚴性)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러한 존엄을 해치는 일이 바로 사건 사고다. 꽃다운 나이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이 그렇고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바로 존엄을 훼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자화상이다.

을미년 새해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확고히 하는데 각별한 노력과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마침 종단에서는 연초에 국제선원이 낙성된다. 단양지역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낼 국제선원은 정신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분당 대광사의 전통명상수련센터도 올해 낙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 시설은 부처님 사상에 입각한 정신문화의 보급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말하자면 생명 있는 존재들의 존엄을 향상시키는 선도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대립을 지양하고 화합을 추구하는 것도 존엄성을 높이는 일이다. 종단이 올해 북한 개성 영통사와 연계한 청소년·청년 교류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매우 고무적이다. 남북불교도가 합심해 교류사업을 더욱 넓혀간다면 한반도의 평화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립과 갈등 대신 화합이, 위협과 폭력 대신 평화가 이루어져야 생명의 존엄성이 커진다.

지난 연말 반기문 유엔 총장은 송년사에서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중략)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다”고 언급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실제로 모든 문제의 해결은 존엄에 대한 가치가 지켜질 때 가능하다.

올 한 해는 부디 비탄과 분노할 일이 줄어드는 대신 모든 사람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일들만 생겨나길 고대한다. 부처님을 웃을 수 있게 우리 불자들이 앞장서자. 그래서 을미년을 평화의 해로 기억할 수 있도록 불교계의 관심과 노력이 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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