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세요?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런 저런 송년모임이 잡혀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의 경우엔 송년법회를 치러야 하겠지요. 대부분 송년행사는 식사를 겸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사를 통해 한 해를 결산하고 정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통계에 의하면 연말 회식 자리에서 가족 간 또는 직원들 간 묵은 감정을 드러내 싸우는 일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를 넘기면 ‘해묵은’ 감정이 될 수 있으므로 풀고 가야겠다는 심리가 반영돼서 그런지 모르나 식사를 앞에 놓고 벌이는 싸움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실제로 ‘먹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분에 맞게, 또한 다른 사람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내용을 섭취한다면 갈등을 일으키거나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반면 부당한 방식으로 취해진 이익으로 구한 음식이라면 주위의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음식의 문제로 주고 받는 흥미로운 문답이 경전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잡아함경〉 ‘정구경’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사리불 존자가 어느 날 마을에 들어가 탁발을 한 후 나무 밑에 앉아 공양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를 본 정구(淨口)라는 외도의 여승이 사리불 존자에게 물었습니다.

“존자께서는 입을 어디로 향하고 공양을 하는지요?”

그러자 사리불 존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출가 수행자에게 떳떳하지 못한 네 가지 음식[사사명식(四邪命食)]이 있으니 첫째는 약물을 만들거나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하는 하구식(下口食)입니다. 둘째는 하늘에 있는 별과 달과 해를 관찰하여 먹을 것을 구하는 앙구식(仰口食)이며, 셋째는 권력에 아부하거나 말재주를 부려 먹을 것을 구하는 방구식(方口食)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술이나 점 따위로 먹을 것을 구하는 유구식(維口食)이 그것입니다. 나는 입을 밑으로 하거나, 위로 향하거나, 사방으로 향하거나, 또는 중간으로 향하게 하고 공양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청정한 법을 행하는 것으로써 음식을 구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외도 정구 여승은 사리불 존자의 말씀을 듣고 감복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습니다.

출가수행자가 이처럼 공양물을 구함에 있어서 기교와 재주를 부리거나 권력을 등에 업는 일 따위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부처님의 교단, 다시 말해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한 공경과 존경이 매우 높았습니다.

오늘날의 사회라고 해서 부처님 재세 당시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입을 벌리는 비루함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당하지 못한 음식을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니 유념할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 잘 먹고 잘 살려면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욕심이 자신을 지배하는 한 언제든 위험지대에 놓여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욕심에 대해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욕심의 눈은 남의 물건이 더 커 보이고, 욕심의 코는 남의 음식이 더 맛있는 냄새가 나며, 욕심의 입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의 말만 고집한다. 욕심의 배는 오로지 자기의 배만 불리는데 정신이 없으며, 욕심의 손은 베풀 줄 모르고 안으로 거둬 들이기만 하고, 욕심의 머리는 온통 자기만을 생각하는 착각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 욕심의 끝에는 예고된 불행이 도사리고 밝은 삶이 아닌 어두운 삶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모두가 부질없는 마음인데 욕심 부려 무엇을 하나. 갈 때는 빈 손으로 갈 것인데, 욕심 부려 무엇을 하려 하나. 오늘도 빈 마음으로 살아가라. 사람의 욕망은 작은 쾌락이 온갖 고통을 동반한다. 사람들의 욕망은 하늘에서 황금이 쏟아질지라도 결코 다 채워지지 않는다.”

17세기 조선시대 학자였던 허균(1569~1618)은 불교와 가깝게 지내면서 세속의 명리와 권세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중앙정치에 뛰어들기보다 지방 고을의 관리가 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수차례 탄핵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그가 파직을 당했을 때 그는 “뜨고 가라앉는 것은 다만 천성에 다 맡기노라. 그대들은 모름지기 그대들의 법을 지키라.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고 천명합니다. 무릇 이간과 모함을 받으면서도 속탈의 경지를 구가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허균은 부처님 말씀대로 살다 간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원망 속에 있으면서도 원망하지 말고, 근심 속에 있으면서도 근심하지 말고, 욕심 속에 있으면서도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공양의 가치는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그런 공양이 가장 맛있는 공양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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