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한 종교 예찬 불구
저출산 문제, 한국사회 만연
자연섭리 믿는 여유 필요

세계의 고등종교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애정이 유별났다. 모두가 다함께 걸어야 할 희망이자, 지극정성으로 보살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새싹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는 일찍부터 아이들을 착하디 착한 동자(童子)로 회자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불교가 오랫동안 받든 진리인 〈법화경〉에는 붓다가 아이들을 크게 예찬한 내용이 보인다.

이 경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다 어린아이 같으면 모두가 불도를 이루었을 것’이라며, ‘이들은 불탑을 짓는다’고 덧붙인 대목도 기록돼 있다.

그리고 〈아육왕전〉에 나오는 삼십이대인상(三十二大人相) 이야기를 들은 두 아이가 깊은 감명을 받아 “흙으로 떡을 빚고, 탑을 지어 붓다를 공경했다”는 가냘픈 불심이 어른거린다. 이를 갸륵하게 여긴 붓다는 “내가 열반한 100년 뒤에는 이 아이들이 전륜성의 절반 이상을 지을 것”이라는 말을 빌려 아이들에게 크나큰 미래를 걸었다는 것이다. 불교보다 뒷날에 세상에 나온 기독교 역시 아이들을 작은 천사로 추켜 올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젖을 물린 어미를 은총(恩寵)으로 표현했으니, 축복을 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꽃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이 차츰 줄어든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에 곧잘 실린다. 며칠 전, 일간신문에는 한국의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를 앞지르는 여초시대(女超時代)가 도래했다는 통계청 발표를 공개하면서, 이에 따른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걱정하고 나섰다. 이 같은 현상은 2016년에는 생산가능 인구가 정점을 찍고, 2017년부터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기를 가질만한 가임여성(可姙女性) 한 명이 낳는 아기 숫자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1.15명으로 집계되어 그 이전 조사에 비해 0.04명이 줄었다. 이는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꼴지 수준인 것을 보면, 아이들을 만나기가 점차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인구 번식이 먹거리를 내놓는 땅의 위력보다 더 크다”는 이른바 멜서스 이론에 밀려 아기 낳기를 그토록 꺼렸던 프랑스와 독일 등 서구의 선진국도 한국의 출산율을 오래 전에 앞질렀다.

그래서 몇 년전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세대간 평균연구회장 폴 휴잇의 경고가 떠오른다. “출산율을 높이지 못하면, 한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그러니까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즘 OECD가 내놓은 고령인구 비중 전망을 보면, 한국은 머지않아 세계의 노인왕국에 접어들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일하는 소장층 6명이 노인 한 사람을 먹여살리는 셈이지만, 오는 2030년에는 생산이 가능한 인구 3명이 노인 한 사람을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세상이 빡빡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에게 이런 버거운 짐을 물려준다는 말인가. 아무런 실속 없는 저출산의 유산이 너무 무겁다.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요즘의 세태가 야속하다. 여성이 건강을 유지할 때, 8~12명의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생물학적 보고서를 읽지 않고서도 많은 자녀를 두었던 지난날 어머니 그룹이 위대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만큼 키운 동력의 원천도 지난 세대의 어머니 힘이었다.

“제 먹을 것은 제가 챙겨서 나온다”고 믿었던 옛날 어머니들의 낙천적 여유만만이 그리운 시대다. 이는 자연의 섭리를 믿은 종교적 심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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