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총본산 구인사가 지난 5일부터 13일까지 겨울나기를 위한 김장을 했다는 소식이다. 소요된 배추는 2만5000포기. 4만포기까지 담기도 했다는데 소비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엄청난 양이다. 여기에 고추 등 대부분의 김장 재료도 직접 수확했다고 하니 사찰 자급자족의 모범사례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구인사 김장은 상월원각대조사께서 천태종을 중창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조사께서 초가삼간을 짓고, 대중교화에 나설 당시는 먹을 게 풍족치 않아 김치 외에는 반찬이 드물었다. 이때 대조사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을 천태종의 기본수행으로 삼으셨다. 농사일조차 수행으로 여기게 했고, 밤에는 별도로 관음주송에 매진토록 가르쳤다. 천태종 3대 지표의 하나인 생활불교의 전통이 이렇게 세워졌다.

굳이 백장회해 선사의 〈백장청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찰에서는 예로부터 울력을 수행의 방편이라 불렀다. 실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절에서는 논밭 경작이 보편화돼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사찰 재정이 나아지면서 사찰 울력은 점차 감소했다. 남방불교의 수행자들이 탁발을 통해 음식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면, 북방불교 특히 한국불교는 울력을 통해 이런 정신을 계승해왔다. 농사를 단순한 노동이 아닌 수행이라 부르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불교의 근간은 승속을 불문하고 수행이다. 수행을 하다보면 잡념과 번뇌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 울력은 잡념과 번뇌를 물리치는 특효약이다. 또한 울력은 불자들에게 무소유와 하심을 기르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백장 선사가 농사일을 참선 수행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 상월대조사께서 주경야선을 강조한 이유를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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