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리 먼 왜곡된 사실
종교권력 역시 포장 급급
변화 위해 사부대중 나서야

요즘 극장가에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라는 영화가 관심을 받고 있다. 10여년 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국민 전체가 그렇게 이성을 잃었나 의아하게 느껴질지는 모르나, 당시 우리사회 분위기는 영화에서 표현된 것보다 훨씬 더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 광기가 지나간 후 우리가 겪어야 했던 허탈감은 결코 작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허탈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모론이 생겨나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이 믿었던 바가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 내에서 다수가 믿으면 그것은 힘으로 나타나 일종의 권력이 된다. 세상에서 다수가 믿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종종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사건·사고와 같은 사회현상이나 특정 상황에 있어서 다수가 믿는 표면적 사실과 그 이면의 진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진실과 달리 사실이란 일종의 허구이자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것을 불가에서는 우리의 인식체계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의도적으로 진실과는 다르게 사실을 왜곡하고, 그것을 믿는 다수의 지지를 통해 권력을 취하는 이들이 언제나 있어 왔다. 왜곡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소수자는 해당 집단으로부터 언제나 박해 내지 음모를 받아 제거되거나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제보자에게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접한 이들이 과거 자신이 믿던 것을 버리고 상대방의 진실된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진실을 직면할 때에는 그 어느 쪽이건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의 대표적 권력으로는 정치권력, 자본권력, 언론권력이 있지만 종종 잊기 쉬운 것이 종교권력이다. 종교계 역시 진정한 가르침보다는 사람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왜곡된 내용으로 세뇌시킴으로써 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재물 등의 세속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다른 권력과의 연계를 추구하고, 돈과 인맥을 관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종교의 틀을 이용해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돈오돈수의 참선 수행을 표방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을 향해 한국 참선수행의 상징적 선사인 송담 스님이 탈종선언을 했다. 예전부터 자리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수행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온 스님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조계종단과는 청정수행의 가풍이 달라 탈종하겠다는 송담 스님의 선언은 그동안 조계종단이 얼마나 부패하고 희망 없는 집단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고, 놀라움 속에 이를 접한 많은 불자들은 이를 계기로 총무원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종단의 변화는커녕 송담 스님 결정에 대한 여러 허무맹랑한 이유들이 만들어져 유포되고 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측이 할 말이 없을 때 취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진실에 직면할 용기가 없거나 이미 너무도 세속가치에 물들어 거듭 태어날 수가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만, 그 관점이란 육근에 의해 만들어져 언제고 특정 세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 조심스레 한국불교를 위해서라도 사부대중의 구체적 행동이 필요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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