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쌀 시장 개방
국가 비축량 계속 늘어
北에 보시하는 마음 내자

세계 100여개 나라가 쌀을 먹거리로 쓰기 위해 벼농사를 짓는다. 북위 53도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모헤 지역으로부터 남위 40도의 아르헨티나 리오네그로강 유역까지를 아우른 지역이 벼농사권에 들어간다. 더구나 아시아권의 벼농사 집념은 유별나다. 그래서 해발 마이너스 1m의 게랄리에서도 벼를 심는다. 어디 그뿐이랴, 해발 2600m에 이르는 네팔의 주물라 같은 고랭지에서까지 아시아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우리가 붓다로 공경하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아버지인 가리비성의 성주 이름 수도다나에 보이는 ‘다나’의 뜻은 밥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수도다나를 한어로 옮길 때, 깨끗한 밥을 상징하는 정반왕(淨飯王)으로 적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수도다나의 여러 동생들 이름에도 ‘다나’를 넣어 슈크로다나를 비롯해 아푸라토다나와 도토다나 따위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시아인들은 벼농사를 지어 거둔 쌀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길 만큼 도작문화(稻作文化)에 동화되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 그의 활동무대 언저리의 벼농사는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농사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확량이 퍽이나 적어 마짓밥을 지어 올리는 공양쌀 마련이 고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중들 앞앞이 그릇 하나에 마짓밥을 조금씩 담아 골고루 나누어 먹었다. 그렇듯 넘치지 않게 받아먹었던 절집의 관습은 아직도 발우공양(鉢盂供養)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쌀이 모자라 궁핍(窮乏)에 허덕이는 세월을 오랫동안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1970년대 들어 통일벼라는 개량품종을 심어 식량자급의 길을 겨우 트기 시작했다. 보리나 벼 따위의 곡물이 채 여물기도 전에 미리 거두는 이른바 풋바심이라는 말이 사라졌으니,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 고단한 삶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러나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는 냉혹한 것이어서, 한국은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쌀 개방 압력을 받았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때 일인데, 당시 한국은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대신에 국내 쌀 소비량의 1%에 해당하는 물량을 1995년부터 10년간 수입하는 방향으로 급한 불은 잡았다. 그리고 2004년에는 이를 10년간 추가로 유예하는 방식으로 틀었지만, 새해 2015년부터는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통상대국(通商大國) 반열에 오른 한국정부가 국제 관계를 막무가내로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제부터는 유리한 관세를 위한 국가간의 협상과 국내 이해 관계단체(농민)를 설득하는 일이 남았다. 이 가운데 국내 농민단체를 설득하는 일은 국외 협상을 돕는 우군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논리가 껴들어서는 아니되고, 오로지 쌀 산업 발전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든 지난해 소비하고 남은 쌀 99만5000톤이 올해로 넘어왔다. 여기에 의무 수입량 30만7000톤을 합하면, 110만2000톤을 비축한 것이다. 쌀 개방화에 따라 비축량이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남는 쌀을 북한 식량 원조에 쓰자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이 지난해 생산한 쌀 수확량이 유엔 권장량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보고서도 밝혔다.

가여운 북녘 동포들의 텅텅 빈 발우에 곡식 한 줌을 보시하는 마음으로 남는 쌀을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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