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차례는 잘 지내셨는지요? 모처럼 친지들과 어울려 담소를 즐겼으리라 생각합니다. 명절이 즐거운 이유 중의 하나는 가까운 친·인척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펴들면 제일 먼저 부고란부터 살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의 가족이 작고했다면 빠지지 않고 문상하였습니다. 그리곤 진정으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을 같이 했습니다. 그의 나이 40이 채 되기도 전에 그는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해 최연소 상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가 남다른 창의력이나 기획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오너의 친인척도 아니고 학연·지연도 전혀 없는데 해마다 인사 시즌이 되면 그의 이름이 추천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는 그의 문상에 있었습니다. 그는 문상을 형식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예의 바르게 애도를 표하고 꼭 자기 명함을 꺼내 주었습니다. 상주 역시 찾아올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며, 익숙하지 않은 얼굴인데 찾아 와 조문해주니 남다른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그가 초고속 승진을 하게끔 만들어 준 동력입니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위기상황도 쉽게 돌파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므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남들의 고통을 오히려 즐기는 경향이 짙습니다. 학교 폭력과 군부대 내 가혹행위 등은 이러한 현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관련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간관계는 인과(因果)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가장 기본적인 등식마저 외면하게 되면 인과율(因果律)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홀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안기면 반드시 나에게도 그에 의한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과율을 믿지 않으므로 남의 고통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그래서 폭력이 발생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인과의 엄중함에 대해 불자님들의 이해를 돕고자 〈중아함경〉 ‘앵무경’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겠습니다.

어느날 도제(都提)의 아들 앵무마납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중생들은 다 같이 사람의 몸을 받았으면서도 지위가 높고 낮으며,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겼으며, 목숨이 길고 짧으며, 병이 있고 없으며, 재물이 많고 적으며, 총명하고 어리석게 되나이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중생들이 자기가 행한 업 때문이니라. 지은 업에 따라 갚음을 받고 업을 인연하여 높고 낮음이 생기느니라.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수명이 짧은 것은 다른 생명에게 모질게 굴거나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마셨기 때문이니라. 어떤 사람이 병이 있는 것은 주먹이나 막대기로 다른 생명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니라. 얼굴이 못생긴 것은 성질이 급하고, 번민이 많아 화를 잘 내고, 걱정과 질투가 많아 다른 사람과 자주 다퉜기 때문이니라. 가난하고 재물이 적은 것은 빈궁하고 고독한 사람, 수행자나 거지에게 음식이나 옷,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자주 지혜로운 이를 찾아가 참다운 진리를 배우지 않고, 죄가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묻지 않으며, 검고 흰 것을 깨우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인과는 촘촘한 그물망과 같아서 터럭만큼도 빠져나갈 틈이 없다.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일체의 현상은 스스로 지은 업의 결과물이니라.”

인간관계는 인과를 만들어내는 자작자수(自作自受)의 과정입니다. 1945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영국의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과 어린 시절 운명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당시 명문가의 소년이었던 처칠이 방학 때 시골마을에 놀러 와 수영을 즐기려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마을에 살던 가난한 소년 플레밍이 처칠을 구해줍니다. 두 소년은 이후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워 갔습니다. 꿈이 의사였던 플레밍이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려 하자 처칠은 재력가인 아버지에게 말해 플레밍을 런던으로 불러들였고 학비를 지원했습니다. 마침내 의사가 된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명했고, 전쟁 중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처칠을 살려내게 됩니다. 처칠은 훗날 영국 수상을 두 번이나 역임하며 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이름을 날립니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옷깃 한 번 스치는 인연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물며 남의 고통을 즐긴다면 그 업보는 〈중아함경〉 ‘앵무경’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지중한 인연임을 알아 화목한 인간관계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상생의 행복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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