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드러난 법조계 무례함
인간성 어린 행동거지 필요
마애삼존불 자비 미소 닮길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의 생활 규범은 법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강제(强制)하는 힘은 종교적 신앙이나 도덕적 양심으로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오로지 국가가 그 주체가 되기 때문에 법이 무서운 권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법을 다루는 전문적인 직업의 사람들이 법조인(法曹人)이다. 법을 실제 다루는 판사와 변호사의 세계를 법조계로 호칭하지만, 검사까지를 아우르는 경우도 있다. 이들 법조인은 모든 법률을 꿰뚫어 익혀야 하는 터라, 이 자리를 차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등용문은 좁고, 까마득하게 높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1948년,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으로 출범한 이들의 등용문은 1963년부터 사법시험으로 통칭하는 이른바 사시(司試)로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바늘귀만큼 좁은 문이어서, 사시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거치기만 하면, 장래가 약속되어 왕조시대의 장원급제에 버금가는 영예가 뒤따랐다.

그래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법원 분위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옛날 재판소(裁判所)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 가시지는 않은 모양이다. 요 며칠 전 여러 일간신문에는 서울중앙법원 형사부의 어떤 부장판사가 법정 암행방청(暗行傍聽)을 하고, 그 소감을 밝힌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는 증인의 말을 가로막는 담당 판사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 강압적으로 들렸거니와, 3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합의부에서는 부장 판사가 배석 판사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결국 합의가 아닌 독단적 판단으로 오해할 소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새파란 판사가 나이 먹은 피고인에게 막말을 던지는 법정의 무례가 그동안 조목조목 드러났으니, 법관들도 변명할 말이 더는 없을 듯하다.

이같은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쏟아낸 부장판사는 공정한 판결 못지않은 법관의 도리는 인간성 어린 행동거지(行動擧止)라는 점을 들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흔히 백제의 미소로 일컫는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ㆍ국보 제84호) 사진을 보여주며 자애로운 자세로 법정에 나서기를 주문했단다. 그에게서 얼마만큼의 불심이 엿보인다.

이번에 법관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낸 부장판사의 불자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애삼존불의 자비를 까맣게 모르는 무뢰한은 아니리라. 서산 가야산 바위벼랑의 삼존불상은 세 분 불ㆍ보살의 기묘한 만남을 표현한 걸작의 고대불교미술이다.

한가운데 본존 여래는 우주 만유의 실체를 진여(眞如)하게 깨달은 붓다이시다. 그리고 오른쪽은 제화갈라(提和竭羅)로도 표현하는 봉지보주보살(捧持寶珠菩薩)이고, 왼쪽은 미륵보살(彌勒菩薩)이다. 그러니까 현세불이신 여래와 더불어 과거불과 미래불이 법화시대(法華時代)에 해당하는 낮 12시인 정중(正中)에 만났으니, 삼세불(三世佛)이 연출한 한낮의 향연이 분명하다.

이들 삼세불이 모인 사연은 〈묘법연화경〉 ‘방편품(方便品)’에 나온다. 더구나 삼세불을 표현한 마애삼존불 속의 세 분 불ㆍ보살은 크나큰 자비가 세상에 가득하기를 염원한 손짓(手印)을 보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자비로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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