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자치단체장들이 의욕적인 새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의 사전적 의미는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을 기반으로 하는 행정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하는 단체나 일정한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이 직접 선출한 기관을 통해서 그 지방의 행정을 처리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지방자치가 비단 오늘날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선 지방관리의 정책과 덕목을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조선후기의 대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바로 목민관, 즉 지방 수령들이 지켜야 할 지침과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입니다.

지금은 지방자치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민적 충격을 위로하고 선거를 치르면서 입은 서로간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함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 가르침은 지방자치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은 물론 우리가 다 함께 새겨들어야 할 경책입니다.

“형벌을 통해 범죄를 막고자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농사와 가축 기르기에 열심인 자에게는 씨앗과 사료를 지급하여야 하고 상업에 열심인 자에게는 자금을 지급하고 관직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는 생활에 합당한 봉급을 지급하여야 한다.”

부처님은 공동체 사회를 꾸려가는데 있어서 이러 저러한 엄벌 형태를 지양하셨습니다. ‘형벌을 통해 범죄를 막고자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시는 이유는 형벌이 범죄를 막는데 주효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대목입니다. 이를 바꿔서 말하면 범죄를 막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름 아닌 용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지은 죄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데서 만들어가는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기반을 만들어 줄 때 이뤄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씨앗을 주고 상업에 종사하는 이에게는 자금을 지원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잘못된 일이 있으면 ‘남 탓’으로 돌리고 다른 이의 잘못에 대해선 엄하게 문책하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그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원망을 키워 왔습니다.

얼마 전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명상가 아잔브람 스님이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아잔브람 스님은 불교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특별히 용서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는 “남 탓을 하며 분노를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애도가 아니다”면서 남아공에서 있었던 ‘용서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남아공의 한 여성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남편을 고문하고 살해한 남자를 용서해주는 내용입니다. 남자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를 것으로 알았던 대중들은 오히려 포옹하며 용서하는 그 여성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송나라 때의 문인 범충선은 “다른 사람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교육에세이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도 시인은 이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마음이 온유해지고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대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용서이고 다른 이에 대한 용서가 아닐까요?”

용서란 참으로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지혜와 경륜과 너그러운 포용력이 없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고결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이르길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남을 책망하는 데는 밝고, 아무리 총명할지라도 자기를 용서하는데는 어둡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고 했습니다.

링컨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됩니다. 그가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인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위대한 용서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인들의 마음은 증오와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남부인들은 복수에 불타 있었고 북부사람들도 남부인을 징벌해야 한다며 증오의 마음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자기가 속한 북부 공화당 주장에 대해 반대하면서 남부인을 용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노예제도를 폐지했으면 됐지 사람을 처벌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링컨은 이러한 용서와 화해정신을 지키기 위해 끝내 암살자 손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은 오늘날 세계 강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용서의 힘은 이렇게 큰 것입니다. 용서는 곧 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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