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상사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 국민이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22살의 대학생이 행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7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조사 결과 이 묻지마 사건의 원인은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용의자는 범행 전 살인 예고영상까지 남겨 놓았는데 ‘여자들이 자신을 외면한다’며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마음 하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특히 조변석개(朝變夕改)로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봤을 때 마음 다스리기란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확고부동한 마음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란 보통 사람들로선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옛 조사들은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리 저리 휩쓸리는 것은 마음을 바로 잡는 중심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일에 대한 신념이 세워져 있다면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끔 자신을 다잡아야 함에도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풀어놓습니다. 결국 일은 망가지고 본인도 절망 속에 신음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마음을 바로 잡는 중심축을 간과하고 주변의 여건과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신념의 문제를 떠나서 일상의 삶을 통해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혹은 상대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또 이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변하는 마음을 간사하다고 빗대어 말합니다.

불자들이 나누는 인사말에 ‘여여하셨습니까?’란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 말하면 같을 여(如)로 ‘한결 같으냐’란 의미입니다. 즉 변하지 않고 속되지 않게 부처님께 귀의한 그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란 인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여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여심을 흩뜨리는 것이 산란심(散亂心)입니다. 산란심에는 7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초기경전 범어본에 의하면 첫째 브야디(vyadhi)로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질병입니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묻지마 범행도 이런 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인에 의해서 저질러졌습니다. 둘째는 스티아나(styana)로 마음은 있어도 행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말합니다. 셋째는 삼사야(samsaya)로 어떠한 의혹이나 우유부단을 일컫습니다. 넷째는 프라마다(pramada)로 무감각이나 무관심을 말합니다. 다섯째는 알라스야(alasya)로 게으름입니다. 여섯째는 아비라티(avirati)로서 감각적인 것에 이끌리는 욕망과 욕정을 가리킵니다. 일곱째는 브란티 다르샤나(bhranti darsana)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믿고 주장하는 망령된 견해입니다. 또는 그릇되거나 쓸모없는 지식이나 환상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한결같은 마음을 방해하는 요인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만 한 것일까요?

<잡아함경> ‘오비구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바라나시 녹야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비구들이여! 내가 물을테니 아는 대로 답하라. 육체(色)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 시시각각 변해서 무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한 것이라면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육체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것이며, 나이며, 나의 본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가 아닙니다.”

“그러면 정신의 세계인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지(行)와 의식(識)은 어떠한가?”

“그것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며, 즐거운 것이 아니며, 나의 것도 나의 본체도 아닙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그렇게 관찰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나의 성스런 제자들은 모든 존재의 무상을 알고 있다. 모든 존재의 무상을 알고 있으므로 탐착하지 않게 되고 탐착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을 얻게 된다. 해탈을 얻게 되면 ‘이제 미혹한 삶은 끝났다. 더 이상 미혹의 삶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은 ‘법신(法身)’입니다. 법신을 보는 사람은 마음 또한 한결같이 유지합니다.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지 아니하므로 늘 ‘한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그 마음이 산꽃이고 계곡을 흐르는 물입니다. 항상 여여하므로 자태가 곱고 평화롭습니다. 마음이 행복하다는 뜻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겠습니다. 여여한 그 마음이 행복을 여는 문입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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