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들의 흔한‘갑질’
계급사회에도 윤리는 존재
한국사회‘윤리적 보수 없어

내가 가장 즐겨 읽는 불전(佛典) 중의 하나는 〈아함경〉이다. 부처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책이라 〈아함경〉 독경은 마치 부처님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을 들게 한다. 또한 쉽고 편한 문체로 쓰여진 〈아함경〉은 글을 쓰며 사는 사람에게 수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함경〉에서 보이는 부처님의 생각들을 우리 시대의 기준으로 굳이 범주화한다면 아마도 ‘윤리적 보수’ 정도가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재가자의 덕목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장아함경〉 중 〈선생경〉을 보자.

국내외 불자들이 애독하는 이 경전에서 부처님이 아내나 하인(피고용자)의 덕목을 열거할 때 그들이 남편이나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긴다. 즉, 부부나 고용 또는 피고용 관계가 수직적이라는 그 당시 계급사회의 ‘상식’을, 부처님이라고 해서 거역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하인은 주인의 위엄을 드날려야 한다…’ 등의 말들은 부처님의 설법이 지배적인 가부장적 담론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부처님은 그 보수적 주장에다가 늘 호혜성의 윤리를 담는다. 비록 위아래가 분명한 불평등한 사회라 하더라도 윗쪽이 아랫쪽에게 속칭 ‘갑질’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생각했던 고용주는 권리와 함께 의무도 지닌다(하인을 능력에 맞게 부리고, 먹을 것을 제 때 주고, 보수를 제 때 주고, 병이 나면 약을 주고, 피곤하면 휴가를 허해주고). 말하자면 ‘막 부린다’기보다는 모종의 공생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이 이야기한 고용주의 의무는 남의 노동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최소한의 룰이다. 그러나 과연 ‘윤리적 보수’의 이러한 최소한의 표준은 대한민국에서 어디까지 통하는가? 87%의 직장인들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통계로 봐서는 대다수에게 고용주들이 ‘능력에 맞게’ 일을 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선생경〉은 술을 삼가라고 권하지만, 44%의 직장인들이 그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해소해보려고 발버둥쳐야 하는 만큼 그 하루하루가 괴롭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은 대부분에게 있으나 평균 40분에 그쳐 제대로 먹고 쉬기에 매우 벅차다. 거기에다가 77%에게 점심값이 비싸게 느껴질 만큼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작업 강도는 세계 최악이면서 보수도 열악한 편이다. 

부처님은 고용주들에게 임금이라도 제 때 주라고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27만의 노동자들이 임금체불로 고통 받는 반면, 임금체불이라는 범죄로 실형을 받은 사업주들은 최근 3년간 11명에 그칠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과도한 노동을 시키고 임금이나 휴식시간도 제대로 안주고, 그 건강에 대한 배려도 하지 않는 한국 자본가층은 과연 부처님의 ‘윤리적 보수성’과 얼마나 거리가 멀까? 우리는 한국 지배층을 자주 ‘보수’라고 부르지만, 이 말에는 어폐가 적지 않다. ‘보수’는 어떤 가치라도 보수(保守)하려는, 즉 지키려는 사람들을 일컫는 낱말이지만 생명을 해쳐가면서라도 이윤만을 얻으려는 자들에게 무슨 윤리나 가치가 있겠는가? 〈선생경〉을 따를 만한 ‘윤리적 보수’는 한국 지배층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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