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가 세운 청해진
해로 안전ㆍ가뭄 구휼 앞장
청해진해운과 비교돼

고대국가 신라를 해상왕국으로 끌어올리기까지는 오늘날 전남 완도 땅에 자리했던 청해진(淸海鎭)이 중심축을 이루었다. 일찍이 당나라로 건너가 타국에서 수군 장교로 이름을 떨친 장보고가 신라로 돌아와 서기 828년부터 개척한 군사ㆍ무역기지가 청해진이다.

신라 하대의 청해진은 당나라와 더불어 일본을 잇는 해상 교통로의 요지였기 때문에 국제적 무역기지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는 바다의 뱃길로 불쑥불쑥 뛰어드는 해적을 소탕하고, 여러 갈래의 해로를 평화롭게 다스렸다고 한다.

이 무렵의 장보고는 신라인들이 모여 사는 당나라 산동성 적산촌(赤山村)에 법화원(法華院)이라는 여법한 절을 지어 후원했다. 불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어떻든 그가 청해진을 개척한 9세기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국제 해로가 서너 개에 이르렀으니, 해상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고대사회의 해상 사고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나, 희생자보다 이를 지켜보는 산 사람들의 슬픔이 컸으리라. 그래서 불교는 슬픔이 가득한 산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끌어들였다. 불교가 수용한 용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주는 신이(神異)한 동물로 회자되었다.

용을 초능력의 동물로 묘사한 대표적 사례는 일본 교토박물관이 소장한 그림 ‘화엄종조사회권(華嚴宗祖師繪卷)’이다. 이 두루마리 그림 가운데 ‘의상도(義相圖)’ 제1권에는 의상이 당나라에서 화엄을 공부한 다음 황망한 귀국길에 올랐을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화낭자가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는 설화의 첫머리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용으로 변신한 선화낭자가 의상이 신라 땅에 이르는 험난한 뱃길을 안전하게 지키는 그림을 스펙터클하게 표현했다.

용은 일찍부터 불교 속으로 들어왔다. 용수(龍樹)가 대용보살(大龍菩薩)이 사는 용궁으로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몇몇 기록으로 미루어 화엄에는 용과의 깊은 인연이 엿보인다. 지난 4월 16일 화창했던 봄날 아침, 국내 최대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미증유의 대참사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용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서 희생자 구조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세월호의 선주사(船主社) 이름이 청해진해운이다. 이 해운사의 실세는 몇 년 전, 여러 사람을 집단자살로 내몰았던 이른바 오대양 사건의 주역인 세모 그룹 유병언 전 회장과 두 아들이라는 뉴스가 여러 매스컴을 탔다. 유럽에까지 얼굴 없는 백만장자 사진작가로 알려진 ‘아해’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이들 일가의 재산은 프랑스와 미국 등지의 토지와 대저택을 합하면 1000억 원대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해맑은 얼굴을 한 청소년 학생들을 선실에 좌정시킨 채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온 선장이나, 청해진해운의 실세는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가 싶다. 청해진을 해운사 이름으로 냉큼 따 온 백만장자 회장은 그 옛날 장보고의 행적을 외면했을까. 장보고는 신라에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끼니를 놓치면 당나라에서 식량을 빌려다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청해진으로 불러들여 보살폈다고 한다. 그의 구휼(救恤)을 까맣게 모르는 청해진해운 실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청해진의 깊은 사연을 어찌 다 알겠느냐고…. 돈 방석이 아닌 구휼과 자비를 알 턱이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