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운영의 공화주의
칠불쇠퇴법이 근간
율장ㆍ헌법 등 원칙 지켜야

“카필라성(Kapilavastu)은 BC 6세기경 사캬공화국(Sakya republic)의 수도였다. 공화국의 수장(chief) 슈도다나(Shuddodhan)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친이었다.”

지난 2월 한국교수불자연합회의 인도성지순례에 참가하여 카필라 유적을 방문하고 그곳 안내판에서 읽은 구절이다. 붓다의 모국인 사캬가 공화국이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공화정치의 기원을 아테네와 같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찾지만 인도에서는 붓다의 시대에 사캬, 밧지(Vajji), 말라(Malla) 등에서 공화정이 실시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주(周)나라 때 여왕(勵王)을 쫓아내고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함께 다스린 공화정의 사례가 있다.

인류 역사상 여러 형태의 공화국이 있었지만 그 공통된 특징은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공동체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규칙에 의해 그리고 구성원들의 합의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독재의 반대말은 공화주의에 가깝다. 어떤 정치체제나 그것이 1인지배의 군주정이건 소수지배의 귀족정이건 또는 현대의 민주정이건, 집권자가 자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 그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기 때문이다.

공화정치는 국가가 정한 원칙과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정치를 의미한다. 그래서 원래 민주정치는 데모크라시, 즉 민중의 지배와 공화주의가 결합된 것이다. 데모크라시도 공화주의가 없으면 폭민정치, 또는 우민(愚民)정치로 타락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헌법 제1조에 못 박아 놓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붓다는 많은 왕들의 귀의를 받아 그들을 교화했다. 붓다가 공동체의 이상적인 운영원리로 제시한 것은 공화주의였다. 이는 붓다가 마가다국의 침공위험 아래 놓인 공화국 밧지를 위하여 국가가 쇠퇴하지 않는 칠불쇠퇴법(七不衰退法)을 설하고 동시에 승가(僧家)공동체에 대하여도 승가가 쇠퇴하지 않을 칠불쇠퇴법을 설한 데서 잘 나타난다. 그 내용은 공화주의 원칙이다.

칠불쇠퇴법의 첫째는 국가나 승가나 사람들이 자주 모여 바른 일을 논의하면 공동체는 번영하고 쇠퇴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하가 서로 화순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존경하는 한 번영은 있고 쇠퇴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법과 금기를 잘 지키며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한 번영은 있고 쇠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넷째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는 일. 다섯째는 종묘를 받들고 조상을 경배하는 일. 여섯째는 여성들의 정결. 일곱째는 사문과 계를 존중하는 자를 받들고 봉양하는 일 등을 하는 한 번영하는 일은 있고 쇠퇴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주어와 대상에 따라 적용이 다를 뿐 칠불쇠퇴법의 원칙은 국가공동체에 있어서나 승가공동체에 있어서나 똑같이 적용된다.

시대는 변했으나 붓다가 공동체의 운영원리로 제시한 칠불쇠퇴법의 공화주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공동체의 기본원칙과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오늘날의 세태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국가공동체에서는 헌법이 제시하고 있는 원칙들을, 그리고 승가공동체에서는 율장이 제시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반성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