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봄기운이 산하대지에서 생동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따사로운 햇빛이 계곡을 휘감고 돌면 계곡물이 얼음을 풀고 힘찬 물소리로 화응(和應)하듯 아름다움은 서로가 조화를 이룰 때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삼라만상이 아름다운 자태를 빚어내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아름다운 공동체의 조건으로 ‘자비희사(慈悲喜捨)’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 일컬어지는 자비희사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불자들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도의 길이 곧 사무량심입니다.

사무량심의 첫째인 자(慈)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둘째 비(悲)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해 가엾은 마음을 내어 괴로움과 고통을 없애주려는 마음입니다. 셋째 희(喜)는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입니다. 넷째 사(捨)는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마음입니다.

이 가운데 여러분은 희무량심을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기쁨을 공유하고 교감하는 일이란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일이 더 허다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이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중생들의 보편적 심리입니다. 희무량심은 다른 이를 대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 측면을 극복해야 실천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시기와 질투, 잔인함 등 내 안의 부정적 요인을 제거해야 세상의 기쁨과 어울릴 수 있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다른 이의 행복에 대해 깊이 있게 관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된 말로 ‘너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다’는 등식으로 인간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이같은 부정한 마음을 엄격히 다스려 잔재, 즉 찌꺼기마저 없애버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는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고 행복을 공유하려는 반대의지로 늘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자신을 위안 받으려는 옹졸한 심리를 수반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분별심을 타파하라고 말합니다. 나와 남을 분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욕하고 미워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게 되면 남는 것은 욕과 미움밖에 없습니다. 욕과 미움은 상대방에게 했다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화살과도 같습니다. 즉 상대를 욕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을 욕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희무량심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긍정의 심리를 펼쳐 보이는 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문자나 언어를 통해 사회와 교감할 때 긍정의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희무량심으로 가까이 접근해 갈 수 있습니다. 긍정은 부정보다 폭발적 힘을 갖습니다. 긍정적 정서를 키우는 사람이 옆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법입니다.

긍정의 힘을 설명할 때 ‘사탕효과’는 아주 적절한 비유로 제시됩니다. ‘사탕효과’란 1990년대 미국 코넬대 앨리스 아이센 교수가 실험을 통해 입증한 이론입니다. 아이센 교수는 내과의사 44명을 상대로 간질환에 시달리는 가상환자 증상을 보고 처방을 내리도록 하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실험 전 의사 중 절반에게는 사탕 한 봉지를 선물로 나눠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그저 실험 지시만을 내렸습니다. 나중에 누가 더 정확한 처방을 내렸는지 살펴보니 사탕을 받은 의사들이 훨씬 나았습니다. 그들은 환자의 진단과 처방에 대해서 더 높은 창의성을 보였고 더 빨리 관련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특히 환자 진료 초기에 잘못 내려진 진단에 대해선 신속히 수정하는 유연함마저 보여주었습니다.

의사가 사탕을 받는다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또 사탕을 먹는다고 해서 뇌활동이 보다 활발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탕이 긍정적 효과를 낳게 하는데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실험에서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희무량심은 우리 사회에서 ‘사탕’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탕으로써 환희심을 배우고 용기를 얻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건강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쁨의 측면을 더욱 확산하고 교감해 나간다면 그 조화로움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조언입니다.

과거 한 왕이 부처님과 승단을 위해 많은 재물을 보시했습니다. 이것을 본 어떤 신하는 못마땅하게 생각한 반면 어떤 신하는 흡족해 했습니다. 그들의 상반된 태도를 지적하면서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탐욕이 있는 자는 천계에 가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는 실로 보시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어진 사람은 보시를 즐기고 이로써 내세에서 안락을 얻는다.”

여러분은 긍정과 부정 중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게송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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