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 머금은 모성애
여성의 사회참여 확산
따뜻한 사회 기틀 이뤄

며칠 전, 충남 계룡대에서 육ㆍ해ㆍ공군과 해병대 장교의 합동임관식이 열렸다. 5,860여 명의 임관장교가 참석한 임관식에서는 여군 장교가 지난해의 2배가 넘는 341명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중 육군 최초의 여성포병장교로 임관한 임하나 소위는 육군사관학교 재학시절에 ‘전국 트라이애슬론 철인 3종경기’를 완주한 건각(健脚)이었다고 한다. 숱한 남성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으니, 가히 여장부(女丈夫)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사회 각계에 진출한 여성의 약진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계의 여교사와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남성을 앞지른 지 이미 오래다. 우락부락하게 다가온 ‘노가다’라는 말 때문에 여성이 얼씬도 못했던 막노동 현장에까지 여성 책임자를 배치하는 판이니, 모든 직업군(職業群)에는 더 이상 금녀(禁女)의 벽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확산되는 시대의 흐름을 감안하면,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을 보듬는 우먼러브는 모성애를 바탕으로 사회를 포근하게 감싸는 울력으로 발돋움하지 않겠는가.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인격으로 여긴 종교는 불교 바깥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부처님은 바라문을 정점으로 엄격하게 선을 그었던 계급사회에서 사카족의 하인 우팔리를 일찍 승가로 출가시켰다. 그리고 성도 이후 5년째가 되던 해에 베살리에서 출가시킨 부처님 속가(俗家)의 계모 마하파자파티가 뒷날 여성 출가교단 설립을 부추겼던 일은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여성의 뒤를 이어 승가로 나앉은 사카족 여인들이 많았다는 내용도 보인다.

초기 경전은 학식이 뛰어난 쿠주타라 등 여러 여성 재가불자 이름을 애써 기록했다. 이들 경전에는 부처님이 사중(四衆)에게 둘러싸여 법을 말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묘사되었다. 비구와 우바새도 물론 설법의 자리에 모였지만, 비구니와 더불어 우바이의 이름을 하나하나 들추어 챙겼다고 한다.

이같은 불교의 남녀 양성평등은 당대의 혁명적 사조(思潮)가 분명했다. 부처님 시대와 같은 무렵, 현자(賢者)를 자처한 아테네의 소피스트 그룹도 감히 깨닫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이후 지극히 금욕적인 불교 철학자들은 여성을 더욱 높게 끌어올려 반야바라밀다로 우러러보게 되었다. 여성을 초월적 인격자로 승화시킨 이 형이상학(形而上學)의 논리는 <반야경>을 빌려 지혜를 모든 붓다의 어머니로 그려내기에 이른다.

오늘날 사회 속으로 약진하는 여성들을 말하면서, 부처님 시대의 위사카와 말리카라는 두 여인을 빼놓을 수 없다. 부처님의 교화를 도와 동원정사(東園精舍)를 지은 위사카는 착한 사슴을 상징하는 녹자모(鹿子母)로 호칭되었던 여인이다. 그리고 아리카는 프라세나지 왕을 바라문에서 불교로 개종시킨 여인이었으니, 이들은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가운데 사회를 변화시킨 고대의 우먼파워 그룹이었다.

세상을 바꾼 부처님 시대의 선여자들을 새삼 끄집어낸 까닭은 대한민국 사회에 약진하는 오늘의 여성들 의지가 갸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날 보살로 회자되는 여성 재가불자들의 불심을 머금은 자모(慈母) 마음이 이만큼 훌륭한 딸들을 키워내지 않았을까. 모든 어머니들의 그 저력을 칭송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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