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산하대지가 새 기운을 받아 푸른 새싹을 돋게하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운 의식으로의 전환은 계절의 봄과 같이 희망과 풍요를 부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이 새로운 싹과 꽃을 피워내려면 자기 몸을 비워야 합니다.

자기를 비우는 삶은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기에 참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어서 <도덕경>은 다음의 얘기를 들려줍니다.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
불교의 가르침도 비우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비울 줄 알아야 욕망을 절제하고 나아가 남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스님들이 의식으로 쓰고 있는 각종 사물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목어입니다.

목어는 속이 텅 비어있어야 맑은 소리를 냅니다. 제 살을 깎아내는 아픔이 있어야 중생을 향한 목소리가 더 청량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목어는 하나의 법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목어는 잉어 모양입니다. 나무를 깎아 잉어 형상을 만들고 그 속을 깊게 파내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제 절에서 나무 막대기로 목어를 치면 그 청아한 소리에 사람들의 귀가 솔깃해집니다. 목어는 물 속의 중생을 제도하고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도 이를 본받아 쉼 없이 정진하라는 뜻입니다. 또 잉어 형상을 띤 법구로서 수류(水類)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도 함께 수반하고 있습니다.

본래 중국에서는 이 목어를 공양 시간을 알릴 때 이용했다고 합니다. 중국 당말의 고승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 화상은 목어 소리를 듣고 ‘아야, 아야’ 하며 자신을 때리는 듯 아프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사화상은 왜 목어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때리는 것으로 받아들였을까요? ‘비움’이었습니다. 자신을 비우는 의식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선사들이 갖고 있는 역설도 담겨 있습니다. 목어가 울리는 시간은 공양 때입니다. 공양은 바꿔 말하면 ‘채움’입니다. 즉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위해 수련해야 할 육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행위입니다. 현사 화상은 목어의 울림으로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목어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 경지에서 현사 화상은 아직도 비워지지 않은 자신에게서 아픔을 느낍니다. ‘때린다’는 표현이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더욱 비워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채움’의 시간에 ‘비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현사 화상의 이 말은 그래서 역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하심(下心)’입니다. 우리 세속 용어로 바꿔서 말하면 겸손입니다. 사양지심(辭讓之心)이며 상대방에 대한 공경입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할 줄 알면 갈등과 반목이 없어지고 이해와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나의 인격은 높이 올라갑니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입니다. 나를 비우는데 ‘내’가 있을 리 없고 ‘내’가 없는데 ‘내 것’이 어찌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나를 비우므로 무소유이고 무소유이므로 걸릴 것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데 누가 나를 해칠 것이며 누가 나를 능욕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유롭습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자유의 날개는 활짝 펼쳐집니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고매한 인품이 드러나고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니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습니다. 선연(善緣)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니 감동의 이야기가 주위를 감쌉니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최상의 편안한 경지를 즐긴 대표적 인물로는 부처님의 제자 아니룻다를 꼽습니다. 그는 해진 옷을 입으면서도 왕이나 신하가 옷을 상자 가득 넣어두고 아침 저녁 마음대로 꺼내 입는 것과 같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숲에 있으면서도 다락같이 좋은 궁전에서 편안한 침대나 평상에서 비단 이불을 덮는 것과 같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걸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왕이나 부자가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중아함경>제18권은 아니룻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움’은 욕심으로부터의 탈피입니다. 욕심을 비우지 않으면 채우고 채워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결국 욕심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파멸의 길로 끌고 갑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웠을 때 앞서 말한 자유와 행복과 감동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그래서 완전한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을 텅 비움으로써 더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목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동서 직접 덖은 찻잎으로 헌다
천태사찰 다도회 순례
 ⑤ 수원 용광사
2012년 천태차문화대회 다식 금상
가예원 설옥자 원장 다도법 배워
접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홍색 장미꽃이 피어있다. 장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푸른 잎도 눈에 띈다. 누런 빛, 붉은 빛이 도는 꽃도 함께 있다. 장미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입 안에 넣어본다. 달콤한 사과향이 입안에 퍼진다.
수원 용광사(주지 진덕 스님) 다도반 ‘진양 다도회’ 수업 날짜에 맞춰 2월 18일 용광사 다실을 찾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인들이 수업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정명희 다도회장이 슬며시 다가와 다도 회원들이 사과ㆍ당근ㆍ생강ㆍ살구ㆍ오미자 등으로 정성껏 준비한 다식을 맛보라며 권한다. 사과를 절여 장미 모양으로 만든 다식을 하나 맛보니 누군가 사뿐히 다실로 걸어 들어온다. 다도사범 정선혜 씨다.
‘탁~탁~’ 다도사범 정선혜 씨의 죽비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도회원들은 익숙한 듯이 자리에 반듯이 앉아 입정(入定)에 든다. 탐ㆍ진ㆍ치 욕망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정성껏 차를 우려내기 위해서다. 고요한 가운데 다도 회원들의 부드러운 손놀림이 이어진다. 다도의 정(瀞)ㆍ중(中)ㆍ동(動) 정신이다. 하얀 천을 바닥에 깔고, 다구를 하나씩 앞으로 옮겨 놓는다. 탕관에 담긴 뜨거운 물로 다구를 데운다. 다구를 만지는 손길 하나하나에 섬세함이 묻어난다. 데워진 다구에는 황차를 넣었다. 매년 4~6월이면 다도회원들이 직접 하동으로 내려가 수업에 쓸 1년치의 차를 덖어오는데, 이날 사용한 찻잎은 지난해 4월 덖어온 것이다. 진한 황색을 띄는 찻잎에 찻물를 붓고 다구에 따라내자 찻물에 맑은 황금빛이 배어 나온다. 황금색의 귀한 찻물을 붉은 천에 받아들고, 두 손 모아 부처님 전에 올려놓는다.
헌다례(獻茶禮).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의식용 다법(茶法)이다. 원래는 팽주가 차를 우리고 봉차자가 우린 차를 부처님 전에 올리지만 수업 시간이라 팽주와 봉차자가 구분되지 않았다. 헌다는 차회마다 다법이 조금씩 다른데 진양 다도회는 가예원 설옥자 원장의 다법을 따르고 있다.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바른 자세로 앉아 차를 우리기에 왼쪽 움직임은 왼손으로 오른쪽 움직임은 오른손을 사용해 차를 우려낸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가 특징이다.
진양 다도회는 2010년 4월 창립됐다. 당시 주지 스님이던 보경 스님이 신도들의 수행과 인성교육을 위해 다도반 설립을 추진했다. 현재 17명의 회원이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용광사 다도실에 모여 다도사범 정선혜 씨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다도의 기본부터 3인용ㆍ5인용 생활차, 말차, 헌다례 등에 대해 배운다. 하동에서 덖어온 녹차와 황차 외에도 간혹 중국차로 수업하기도 하며, 성균관대에서 발간된 <차의 이해>, <실천 생활예절> 등의 교재로 차의 이론을 다지기도 한다.
다도회 역사는 길지 않지만 진양 다도회원들은 절 안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기법회 때 부처님 전에 올리는 육법공양과 초하루ㆍ가족법회ㆍ관음재일에 올리는 헌다 등 크고 작은 절 행사와 부처님오신날 화성행궁에서 시민들에게 차 공양을 하는 등 외부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2012년 천태차문화대회에서는 다식부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도사범 정선혜 씨는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차를 우릴 수 없다”며 “다도를 통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예를 익히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수원=노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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