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는 청마(靑馬)의 해라고 합니다. 청마는 힘찬 전진과 도약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 해의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고 순일한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순일한 마음은 어제가 괴로웠고 미래가 불확실하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풍요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환한 미소로 삼라만상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니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청마가 비록 도약의 상징이라고는 하나 늘 깨끗한 기운을 안겨주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어두움의 기운을 물리치고 밝음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인생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파세나디왕이 찾아 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바라문이 죽으면 다시 바라문으로 태어나고, 귀족이 죽으면 다시 귀족으로 태어나게 됩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파세나디왕의 질문은 말하자면 ‘사람의 운명이란 한번 정해지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요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대답하셨습니다.

“파세나디왕이여, 인생에는 밝음과 어둠이 있고, 그것은 다시 네 갈래의 길을 만들어 갑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길,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길,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길이 그것입니다. 인생에서 이렇게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데에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바탕이 됩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이란 어떤 사람이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빈궁하고 하천하게 살면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악업을 지어 다시 비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하면 그는 피로써 피를 씻고, 악으로써 악을 갚으며 뒷간에서 뒷간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이와는 달리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길이란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둠 속에서도 몸과 말과 생각으로 선업을 닦아 훌륭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하면 그는 땅에서 평상으로 올라서고, 다시 평상에서 코끼리에 올라가는 것처럼 날이면 날마다 밝음으로 상승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이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몸과 말과 생각이 올바르지 못해 악업을 지음으로써 그 과보로 비천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하면 높은 누각에서 코끼리 등으로 내려앉으며, 다시 거기에서 평상으로, 다음에는 맨땅에, 그리고는 마침내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길이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항상 몸과 말과 생각으로 선업을 지음으로써 더욱 훌륭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하면 아름다운 누각에서 나와 더 아름다운 누각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습니다.”<잡아함 42> ‘명명경(明冥經)’

부처님의 말씀은 현재 자신이 어떠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러분이 어떤 각오와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느냐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작복(作福)입니다. 따라서 내가 밝음의 길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어둠의 길로 떨어지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속에서 지나치게 권력과 명리를 좇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당장 누릴 수 있고 취할 수만 있다면 하는 탐착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이 쓴 작품 ‘큰바위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과거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인데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습니다. 어니스트는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인을 만날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자신도 큰바위 얼굴을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 잘하는 정치인, 글 잘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그들에게서 참된 지혜의 자비로움이나 선량함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한 사람이 어니스트를 일러 ‘큰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칩니다.

어니스트는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몸과 말과 생각이 늘 한결같았습니다. 즉 ‘큰바위 얼굴’을 닮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석양이 짙게 드리워질 때 다른 군중이 어니스트에게서 ‘큰바위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올해 청마의 큰 기운을 받아 묵은 아픔을 모두 털어내고 밝은 세계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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