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새 아침이 밝았다.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면 우리는 희망과 설렘으로 한 해를 설계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설계를 구체화하고 실천하면 성과가 있기 마련이다. 반대로 추상적이거나 허황된 설계는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지난해를 반추할 때 올해 우리 국민에게 주어진 과제는 양극화 해소일 것이다. 지난 연말 정부는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5년마다 실시하는 국민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부유층과 서민층의 갈등, 진보와 보수 진영의 갈등, 기업가와 근로자의 갈등이 크다고 답변한 사람이 각각 80%대를 훌쩍 넘었다. 특히 진보와 보수 진영의 갈등이 크다는 응답은 83.4%로 나타나 5년 전 답변에 비해 13.2%나 급증했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반대심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상황아래 우리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기대하기란 난망하다.

우리가 새 희망의 돛을 올리고 격랑의 바다를 헤쳐 나가려면 이러한 갈등구조가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따라서 상생과 소통은 해묵은 단어라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이루지 못한 미완의 숙제이기도 하다. 상생과 소통 없이는 우리사회에 고질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갈등의 씨앗을 제거할 수 없다. 갈등을 제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다자(多者)관계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 소아적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게 되면 배가 산으로 옮겨가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망망대해라 하지만 항로(航路)가 있고 항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격랑을 만나더라도 무난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 불교에서는 ‘공업중생(共業衆生)’을 강조한다. ‘공업중생’이란 동시대를 살면서 나의 행위가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미쳐 함께 업을 짓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공업중생의 이치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 불자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지혜를 발휘해주길 바란다. 부처님께서는 ‘현세를 불국토로 만들겠다’는 원력을 품고 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불자들이 앞장서 절망을 희망으로 돌리고 낙담의 끝자락에서도 구원의 햇빛을 전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질곡의 과거사와 분단현실 등 역사적·정치적·사회적·지역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으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통합’이라는 구호만 내세워서 갈등을 해소하긴 어렵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승적 접근에 있다. 너와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비록 경제적으로 극과 극의 양극화의 삶을 산다고 했을 때 부자는 타도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빈한한 삶도 척결 대상은 아니다. 서로가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 상관관계의 유기적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같은 인식이 바탕이 돼야 상생과 소통을 이룰 수 있다. 이는 상대에 대한 존경이 배려돼야 함을 의미하기도 하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이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이유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서로간의 증오와 대립을 화해와 용서로 바꾼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 사회가 누구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 서기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세심한 관심을 더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흐름에 불자들이 앞장서 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차이’와 ‘갈등’을 선의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힘이 있다. 종교가 담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분열과 대립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주의(主義)와 주장(主張)은 경계해 마땅하다. 이와 달리 상생과 소통을 기하는 다양한 활동이 불교계에서 활발히 펼쳐지길 기대한다. 그래서 말띠 해를 맞아 힘찬 도약과 전진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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