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불교계의 ‘니까야’ 붐
한국불교에 신선한 바람
모든 이 ‘행복’ 전해주길

힐링의 기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중의 관심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인문학’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향해 상처 입은 마음을 고백하며 위로의 손길을 애타게 구하다가 이제는 스스로 명약을 찾아 숲으로 들어섰으니 그 숲이란 게 바로 인문학과 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내 관심분야인 책과 관련해서는 인문학 혹은 고전을 향한 관심이 아주 천천히 달아오르고 있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불교계에 불고 있는 초기경전에 대한 관심도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역시 불교 고전의 산책이다. 그동안 불교 고전이라면 한문으로 쓰인 경과 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팔리어로 쓰인 〈5부 니까야〉도 당당히 그 대열에 올랐다.

사실 그동안 불자들은 궁금하기도 했다. 절에 가면 듣는 법문과 불교서적에서는 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구절이 등장했고, 불자들은 의심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였지만, 사실 그토록 많은 부처님 가운데 어떤 부처님이 어떤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무리 오래 절에 다녀도 그 막연함과 애매모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육성을 담은 경을 직접 내 눈으로 펼쳐 읽는다는 것은 불교의 정체를 확인하는 작업이요, 불자로서 자신 있게 대지에 발을 딛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를 원하던 사람들에게 한글로 번역된 니까야를 내밀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니까야를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불교고전의 숲을 산책하는 치유의 시간이다. 숲은 예나 지금이나 치유의 공간이다.

그런데 니까야라는 숲은 방대하다. 풍부하고 깊고 넓다. 아마존과 같은 거대한 밀림에 몇 종류의 나무가 있는지 정확히 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니까야도 그렇다. 대체 그 속에 붓다의 어떤 가르침이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4성제니, 8정도니, 3법인이니, 12연기니, 37조도품이니 하는 교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숲에서 한 줌 손아귀에 쥐여지는 나뭇잎 몇 장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든지 들어가서 몇 걸음만 걷게 되면 난생처음 보게 되는 희귀종의 아름다운 나무를 만나게 된다. 니까야는 그렇게 무진장의 숲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딱 한 글자로 니까야를 정의해보라면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니까야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 행복을 ‘니까야답게’ 표현한다면 그게 바로 ‘열반’ 아닐까. 그러니 니까야는 열반이라는 이름의 숲이다. 열반의 숲이 활짝 열렸다. 그 숲에는 누구나 올 수 있다. 언제까지 머물러도 좋다. 단, 니까야 숲은 아주 천천히 거닐어야 한다. 지식과 이론의 두꺼운 옷은 산책을 방해한다. 따뜻하지만 가급적 가벼운 옷을 입고 주머니에는 그 어떤 것도 넣지 않고 빈손으로 사부작사부작 거닐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숲에서 풍겨 나오는 신선한 기운을 한 몸에 다 받아서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해지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그렇다면, 모처럼 불교계에 일고 있는 초기경전 니까야붐이 이왕이면 ‘붐’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새로운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이듯이 니까야라는 허파를 통해 한국불교계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신선한 생명의 피가 끝없이 공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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