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불교시론
일본 불교(佛敎)와 신도(神道)의 관계
  • 김응철(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3.10.04 09:56
  • 댓글 0

군국주의 부활로 신관·무녀
양성하는 신도 주목받아
일본불교계 각성·분발해야

최근 일본 아베정부가 군국주의 부활을 도모하는 가운데 그들의 토착종교인 신도(神道)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불자들조차도 불교와 신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사찰에도 신사가 있고, 신사에도 부처님을 모신 곳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현세구복적 성향을 갖고 있는 일본사람들은 불교와 신도를 구분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믿고, 각종 제의와 공양에 참여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민족종교로 존재하는 신도는 국가적인 왕권제사와 지역사회의 현세이익적 신앙이라고 하는 두 가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일본 천왕의 가계에 제사를 지내는 역할은 신궁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최정상에는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현세 이익적인 신앙의 중심처가 되는 곳은 신사(神社)라고 하는데 일본 전역에 약 8만여 개소가 건립되어 있다.

일본 천왕의 조상신을 모시는 신궁의 본종은 이세신궁이며 이를 관리하는 조직이 신사본청이다. 그리고 각 도도부현 즉 지방자치단체별로 신사청과 하부조직이 설립되어 있다. 이들 조직은 1868년 메이지 천왕이 등극하면서 국가조직으로 개편되었다. 이 때부터 일본불교는 신도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기원전부터 토착신앙으로 일본 열도에 자리 잡은 신도는 불교가 전파되면서 신불습합(神佛習合)이 이루어졌다. 불교가 전파되기 전의 신도는 조상신과 자연신을 숭배하는 자연종교적 특징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가 전래되면서 전통적인 신의 위상이 격하되었고 신도는 불교의 종속적 지위로 자리 잡았다.

수백년 동안 일본신도에서 신앙의 대상이었던 오오나무찌노가미(大己貴神)는 석가여래불로, 오오야마구이노가미(大山昨神)는 약사여래불로, 다고리히메노가미(田心姬神)는 아미타불로 대치되었다. 이로서 신도는 부처님을 신앙의 주체로 수용하였고, 전통의 신은 인간과 동등하게 미혹한 존재로 인식하는 전통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가마쿠라(鎌創) 시대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였다. 일본의 천왕신은 ‘부처님의 화신(化身)’이라는 사상이 전파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신궁(神宮)을 바탕으로 한 이세신도(伊勢神道)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불교와 유교, 그리고 신도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가지와 잎새, 꽃과 열매로 발전하였다는 ‘삼교지엽화실설’이 등장하면서 유일신도(唯一神道) 사상이 뿌리를 내렸다.

에도(江戶)시대가 열리면서 불교와 유교, 도교를 외래종교로 격하시키면서 신(神)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복고신도(復古神道) 사상이 확산되었다. 국수주의적인 복고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일본 신도는 독자적인 종교로 전환된 것이다. 그리고 메이지(明治) 천왕은 1868년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는 ‘신불분리령’을 제정하였다. 이 법안의 공표로 인하여 신사에 있던 불상은 철거되었고, 신사에 소속된 사승(社僧)은 환속한 후 신직(神職)에 임용되도록 강제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승려들이 신관으로 전직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폐불훼석의 탄압이 가속화되었다.

일본 불교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신관과 무녀를 대학에서 양성하고 파견하는 신도와 종교로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신도를 국가종교의 지위로 회복시키려는 군국주의 세력에 대응하여 호불호법의 의지가 필요한 종교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불교의 각성과 분발이 필요한 때이다.

 

김응철(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ggbn@ggbn.co.kr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응철(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