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운 덕 대종사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름방학이 끝나고 전국 초중고가 일제히 개학했습니다. 이 때에 맞춰 부산경찰청은 2학기 개학과 함께 학교 폭력서클을 집중 단속한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성인 폭력배와 연계된 학교 폭력사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신고자를 대상으로 한 보복 폭행에 관한 정보수집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특히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학생 선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폭력은 학교에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하루가 멀다하고 자행되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공권력에 의한 폭행사건도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몇 해전 서울 모지역 경찰서에서는 피의자를 상대로 휴지나 수건 등으로 재갈을 물린 뒤 머리박기, 뒤로 수갑을 채운 채 팔을 꺾어 올리는 ‘날개꺾기’ 등 듣기에도 섬뜩한 고문을 행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의 지탄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같은 잔인한 폭력사실을 접하게 되면 과연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잡아함경〉권 4에서는 “위선을 행하며 그릇된 소견을 가진 자,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압제하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자, 바른 것을 은폐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자, 이 모든 사람이 바로 천한 사람이다”고 말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압제하는 자’야말로 불성을 해치는 중대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서 그 업보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생명있는 모든 존재는 그 누구로부터도 해(害)함을 받아선 안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가장 첫째로 꼽는 계율이 바로 불살생(不殺生)입니다. 불살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해(不害)’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남을 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본래의 어원은 ‘해하다’, ‘죽이다’는 범어 ‘힘사(himsa)’에 부정 접두사 ‘a’를 붙여 ‘아힘사(ahimsa)’가 되고 이는 ‘불살생’, ‘불상해’의 뜻으로 표현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한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온 세상의 모든 중생이 모두 다 여래(如來)의 지혜(智慧)와 덕상(德相)을 가지고 있도다. 다만 망상(妄想)의 집착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이 말씀은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에 대해 어떠한 위협이나 해코지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곧 불성을 해하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불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 불성을 지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해석이 이러한 인식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화를 경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상응부경전〉‘말리(末利)’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해서는 안된다.”

‘말리’란 부처님 재세 당시 코사라국 파세나디왕의 왕비 이름입니다. 그녀는 날마다 ‘말리’란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썼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파세나디왕이 왕비에게 물었습니다. “중전! 그대는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대왕이시여, 저에게는 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나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물어본 것입니다.”

부처님은 파세나디왕이 찾아 와 두 사람의 대화를 소개하며 물었을 때 전적으로 긍정하며 앞의 게송을 들려주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드러나듯 부처님은 ‘나’라는 존재가 농부이든 상인이든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대상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이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행위에 침묵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더욱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력을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불자들로선 응당 그같은 괴로운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어야 마땅합니다. 경전에서도 강조했듯이 폭력은 ‘미완의 여래’를 괴롭히는 아주 천한 행위입니다.
모든 폭력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 근본 요인은 욕구불만이나 열등감에 있습니다. 이 자기 콤플렉스가 폭력적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시각에서 실상을 왜곡하는 무명이 폭력을 부른다고 보기도 합니다. 처음엔 상대에게 위협을 안겨주는 언어적 폭력에서 발전하여 나중엔 다른 이에 대한 무조건적 적개심으로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폭력과 행동을 합니다. 이로인해 다른 이의 존재의의나 가치는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에 대한 소중한 인식과 폭력의 그릇됨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폭력이 용서받지 못하는 사회가 될 때 평화의 세계가 구현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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