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무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불쾌지수도 매우 높습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서는 자칫 말 한 마디 잘못 건넸다가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30대 남성이 온라인 논쟁을 벌이던 동갑내기 여성을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사생활을 비난하는 욕설과 비방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툼의 원인은 대부분 언어사용에서 비롯됩니다. 언어사용에 있어서 생기는 오해와 불쾌감이 다툼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 나오는 욕입니다. 최근 정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가운데 70% 이상이 매일 욕을 한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선 ‘욕배틀’이란 게임이 인기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청소년들 사이에서 욕은 서로의 모방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한 정신과 의사는 “우리는 경쟁사회의 패배자로 남기 싫은 두려운 심정 때문에, 욕이라도 잘해서 센 사람으로나마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다”면서 “욕을 세게 자주 하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각인받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면서도 욕을 많이 하는 청소년들은 진정한 친구가 적고, 외로움이 많으며 겉모습과 달리 의존적 성향이 높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심을 키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일선 학교의 교육자들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욕을 하지 않게 되면 학교에서 왕따도 사라지고 폭력도 거의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어의 사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에게 학습된다는 점에서 어른의 언어습관이야말로 사회의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습관은 곧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답고도 건강한 언어습관을 지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제될 때 긍정적인 언어습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추려서 정리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첫째, 상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미덕입니다. 남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거나 말을 끊어버리면 상대방은 당연히 언짢아 할 것이 분명합니다. 둘째, 나의 이야기는 되도록 짧게 합니다. 다른 이에게 지루함을 주어선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셋째,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태도입니다.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기게 되면 상대방이 불안해 할 뿐 아니라 진정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넷째, 한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가 분명하지 않은 대화는 말 그대로 수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올바른 언어습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차분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어에 감정이 실리거나 분노가 담겨 있으면 상대방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욕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우매한 중생을 깨우치는 다음 일화는 불자 여러분에게도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때 이교도인 악꼬사까 바라드와자라는 바라문이 자신의 친한 친구가 불교에 출가했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께 상스러운 말투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잠자코 바라문의 욕설을 다 듣고 나서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바라문이여, 당신은 집에 찾아 온 손님에게 다과나 음식을 대접합니까?”

“대접하지요.” “만일 당신을 찾아 온 손님이 그 대접을 받지 않는다면 남은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그들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당연히 나의 것이 되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욕하지 않는 나를 욕하였고, 꾸짖지 않는 나를 꾸짖었소. 악담하지 않는 나에게 또 악담을 하였소. 이것들을 나는 받지 않겠소. 그러니 그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욕하는 사람에게 욕하고 꾸짖는 사람에게 꾸짖고 악담하는 사람에게 악담하는 사람은 마치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고 서로 주고 받는 것과 같소. 나는 당신의 음식을 함께 먹지 않으며 주고 받지도 않소. 그러니 그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오.”
부처님의 이 말씀에 바라문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부처님께 귀의하였습니다.

불교에선 말과 관련해 구업(口業)을 짓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구업의 죄는 매우 무겁습니다. 〈천수경〉에선 입으로 짓는 모든 죄업을 날마다 참회하라고 말합니다. 구업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입으로 남을 속이는 망어(妄語)입니다. 둘째 험한 말로 남의 속을 뒤집어 놓는 악구(惡口)입니다. 셋째 이간질로 화합을 깨뜨리는 양설(兩舌)입니다. 넷째 요망한 말로 남을 현혹하는 기어(綺語)입니다. 이 네 가지는 죄가 무겁디 무거운 구업에 해당합니다. 망어, 악구, 양설, 기어가 없다면 우리 인간사회는 정말 행복하고 화합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혀에 도끼를 달고 나온다고 했습니다. 말에 신중을 기하라는 가르침이자 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경구입니다. 바른 언어습관을 기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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