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도 정 총무원장


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옛날 현재(現在)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한 장로 비구가 오랜 병으로 위중하여 병석에 누워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돌보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에선 더러운 악취가 풍겼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데리고 병 중의 장로 비구를 돌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역한 냄새 때문에 장로비구의 곁에 가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더운 물을 떠다가 손수 앓는 장로 비구의 몸을 씻어 주었습니다. 이를 본 비구들은 사뭇 송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이와 같이 보살펴 주는 이 없이 가난하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서다. 병들고 약한 사람이나 수행자,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에게 공양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어 무엇이나 뜻대로 되느니라. 마치 다섯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이 복이 오는 것도 그와 같아서 공덕이 점점 원만해지고 마침내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때 마침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자리를 같이 한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 스님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러 해를 두고 병으로 고생하면서 낫지를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악행(惡行)이라는 왕이 있었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몹시 거칠고 사나웠소. 걸핏하면 새 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괴롭혔소. 그는 힘센 장사를 시켜 채찍을 가지고 자기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치게 하였소. 그는 뇌물을 요구하여 그걸 손에 넣으면 채찍질이 가벼웠고 뇌물을 얻지 못하면 채찍질이 사나웠소. 그러니 백성들은 늘 불안에 떨게 되었지요. 한 번은 어떤 선량한 사람이 터무니 없는 모함을 입어 채찍질을 받게 되었소. 억울한 그가 장사에게 사정했소. ‘나는 정법을 믿는 사람으로 아무 죄도 없는데 남의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힘센 장사는 그가 정법을 믿는다는 말을 듣고 손을 가볍게 놀려 채찍이 몸에 닿지 않게 때리는 시늉만을 했소. 그 장사는 죽은 뒤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 고통을 받다가 죄보가 끝난 다음 축생의 몸을 받았소. 또 600생의 축생이 끝난 다음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늘 중병을 앓으며 고통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오. 그 때 채찍질을 하던 장사가 바로 이 장로 비구요, 나는 전생에 그의 관용으로 채찍질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업은으로 지금 내가 손수 환자를 씻어주게 된 것입니다. 남을 괴롭히는 업은 생을 달리 하더라도 면할 수가 없는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남을 괴롭히거나 죄없는 사람을 모함한 죄업에 열 가지 재앙이 따른다고 게송으로 읊어 대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살아서 못 견딜 고통을 받고/몸을 다쳐서 불구자 되며/저절로 병이 들어 괴로워하고/낙담하여 정신이 혼미해지네. 항상 남에게 모함을 받고/혹은 관청의 형벌을 받으며/재산을 송두리째 잃게 되고/친족들과 멀리 떠나 산다. 가진 집은 모두 불타고/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나니/이것이 열 가지 재앙이니라. 〈법구비유경〉 ‘도장품’


학교 폭력이 경제적 불평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캐나다 맥길대의 프랭크 엘가 박사팀은 ‘학교폭력과 살인, 소득 불평등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즉 소득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가 10% 악화되면 학교 폭력 피해경험은 2.9%, 가해 경험은 2.5%, 가해와 피해 중복 경험은 4%씩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소득격차가 클수록 학교폭력 경험률이 높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학교폭력과 관련해 가해자 격리, 처벌을 중심으로 한 학교폭력 대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폭력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교육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사실 학교폭력에 대한 원인을 우리 사회가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과도한 입시경쟁,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 학교와 학생 학부모간 소통의 부족, 인권교육 부재 등이 학교폭력을 야기하는 주 요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권교육의 부재는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요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청소년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폭력행위를 방관하는 현상에 다름 아닙니다.

〈법구비유경〉의 이 말씀은 폭력의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행위가 단순하게 흥밋거리로 치부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어도 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는 삶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습니까? 손에 채찍을 든 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 가지 재앙을 삶 속에 품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치 독버섯을 품 속에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이같은 부처님 말씀을 널리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혹은 친구를 모함하는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주지시켜 인권과 생명존중의 사상을 깊이 심화시킬 과제는 어른들, 특히 우리 불자들에게 있다 할 것입니다. 올 여름방학 기간 중 교계에서는 이러한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깊이 주지시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